노동계의 주장은 정리해고 등을 통해 오직 근로자들만이 구조조정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에 따르는 정리해고를 즉각 중지하여 일자리를 지키고, 공기업 개혁이나 금융구조조정과 같은 모든 현안의 의사결정은 노조의 동의를 거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파업은 명분-실익없어 ▼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노동계의 파업은 명분도 없고 실익은 더더욱 없다고 판단된다. 한마디로 지금은 파업할 때가 아니다. 모자란 외환보유고만 간신히 채워놓았을 뿐 경제위기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되는 형편이다. 외채는 계속 늘어가고 있으며, 외채를 갚는 길인 수출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고,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우리 자손들은 장차 외국빚에 더하여 아버지세대 빚까지 떠안을 형편이다. 전국민이 합심하여도 어려운 판국에 일손을 놓고 네탓싸움을 벌인다면 이 국가는 어디로 가겠는가?
무엇보다도 파업에 따라 근로자에게 오는 실익이 없다. 만일 파업이나 데모를 통해서 일자리가 창출될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파업은 오히려 일자리를 없애는 역효과만을 가져올 것이다.
첫째, 임시직 일용직 등 취약근로계층과 중소자영업 등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계층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그동안 외환위기의 충격에 따른 소비와 투자의 위축은 하반기쯤 다소 풀리리라 기대됐다. 그러나 노동계의 파업은 소비와 투자를 재차 위축시킴으로써 근근이 유지해온 중소자영업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건설노동시장 등의 일자리 창출에 타격을 줄 것이다.
둘째, 설령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어 노조원의 일자리가 보장된다 하더라도 이는 그만큼 젊은 세대들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고용을 줄여야 하는 판에 노조의 압력으로 줄이지 못하는 기업에서 신규채용을 하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결국 노조원의 일자리를 위해 신규졸업자의 일자리가 희생되는 것이다.
셋째, 한국경제의 합리성에 대한 의구심을 증가시켜 대외신인도 및 외국인의 투자를 감소시키고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구조조정이 해고의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은 상식이고 여기에서 예외된 국가들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상식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현 경제위기의 본질은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구조다.그리고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의 배경에는 비효율적인 경영, 낙후된 금융시장과 함께 경직적인 노동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생산성과 관계없는 임금상승 그리고 일감이 없어도 유지되는 고용 등이 고비용구조를 낳았고 이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오늘의 위기상황을 만들었다. 따라서 현 경제위기에는 노동계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다면 오류를 반복하면서 경제위기를 심화시킨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현재의 노사관계와 관련하여 사용자인 기업의 보다 적극적인 태도가 요청된다. 구조조정에 따른 해고의 불가피성에 대해 기업은 직접 근로자들을 설득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부와 여론에 떠맡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경영계가 정부의 등뒤에 숨어서 정부주도의 노사관계 운영에 편승하려는 무임승차자의 자세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지금과 같은 불안정한 모습을 계속 보일 것이다.
위기시대의 노사관계에서 정부는 백점만점을 받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위기시대에는 노사모두를 만족시키는 해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정책의 선택을 요구한다.
▼ 기업, 근로자 설득해야 ▼
60점을 받으면 족하다는 자세로 초기의 의지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구조조정은 결국 경제를 회생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은 이미 각국의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결코 이해집단과의 타협을 위하여 법질서의 평등한 적용을 정부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메넴대통령이 노동계의 지지를 얻은 대통령이면서도 경제회생을 위해 노동계의 기득권 포기를 당당히 요구했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성일(서강대교수·노동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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