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낙연/용서못할 재산도피

  • 입력 1998년 7월 14일 19시 28분


김영삼(金泳三·YS)정권 몰락의 드라마는 한보사건으로 시작해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신청으로 끝났다. 지난해 1월 5조원의 부도로 표면화한 한보사건은 YS정권 추락의 서곡이자 환란(換亂)의 도화선이었다. 이 사건으로 은행들이 휘청거리고 외자가 빠져나가기 시작해 IMF관리체제로 이어졌다. YS의 차남 현철(賢哲)씨가 감옥에 간 것도 이 사건의 여파였다.

▼한보그룹 총회장 정태수(鄭泰守)씨와 그의 3남인 회장 보근(譜根)씨도 횡령 등의 죄목으로 투옥됐다. 몇달 후에는 차남인 상아제약회장 원근(源根)씨가 미국에서 도박으로 30만달러(당시 약 2억7천만원)를 날려 체포됐다. 이번에는 4남인 동아시아가스 소유주 한근(瀚根)씨가 3천2백70만달러(약 4백60억원)를 스위스은행에 은닉해 지명수배됐다.

▼부도덕한 기업인 일가가 정권과 국가경제를 파탄시키고도 모자라 비리를 계속한 것이다. 그들이 뿌리고 빼돌린 돈은 어떤 돈인가. 은행에서 불법대출받은 돈, 회사에서 횡령한 돈, 세금을 내지 않은 돈… 결국 국민의 돈이다. 자기재산을 도피시켜도 범죄가 되는데 그들은 국민재산을 빼돌렸다. 불법의 극치다. 게다가 한근씨의 수하들도 각각 돈을 챙겼다니 그 기업은 차라리 범죄집단이었다고나 할까.

▼그들만이 아니다.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은 기업인 등이 빼돌린 전체 재산도피액이 ‘너무 엄청난 규모’라고 했다. 2백억달러설, 4백억달러설까지 나온다. 김총장은 ‘난파선에서 자기만 빠져나와 보물을 섬에 숨겨놓은 사람들’이라고 비유했다. 재산도피는 국가경제를 좀먹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다. 김총장은 ‘무자비할 정도로’ 엄단하겠다면서도 도피재산을 되찾아오면 선처하겠다고 했다. 예의주시할 것이다.

〈이낙연 논설위원〉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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