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번 선거 결과는 89년 거품 경제가 붕괴한 이후 일본 경제가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 데 대해 일본 국민이 자민당 정권에 그 책임을 묻는 의미가 있다. 그동안 하시모토 정권은 경제위기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선거 직전 국내외의 압력에 따라 발표한 일련의 정책은 이미 때늦은 것이었다.
다음으로 하시모토 총리의 실각은 스스로 내걸었던 개혁이 실종되었다는 의미를 띠고 있다. 96년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한 후 하시모토 총리는 행정개혁 재정구조개혁 사회보장개혁 경제구조개혁 금융시스템개혁 교육개혁 등 6대 개혁을 내걸고 새로운 자민당 시대를 기약한 바 있다. 그러나 개혁은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개혁 실패의 원인은 개혁보다 경기회복책을 우선해야 하는 사정에도 있었으나 보다 큰 이유는 이른바 ‘정관재(政官財) 유착구조’를 타파하고 과감한 개혁에 나설 수 없는 자민당의 체질적 한계에 있었다. 이같은 집권 자민당의 실패는 역으로 그동안 중단 상태에 있던 정계 개편을 활성화시키는 역동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93년 비자민 연립정권이 성립되면서 소선거구제로 선거제도 개편이 이루어졌으나 선거제도를 변화시키면 거대 자민당에 대항할 수 있는 집권 가능한 대체 세력이 형성될 수 있으리라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바뀐 제도하에서 오히려 자민당 1당 우위체제가 부활한 것이다. 자민당은 우세한 세력관계에 안주해 경기 침체에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하였으며 과감한 개혁을 단행할 개혁 주체도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 중의원 선거 때까지는 상대적으로 거대 여당인 자민당이 계속 정국의 주도권을 쥐리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현재 자민당 내에서는 최대 파벌 오부치파의 좌장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이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고 있지만 닥친 상황은 간단치 않다. 남아 있는 2년 남짓한 임기 중에 경제를 회복 기조에 올리면서 개혁을 본 궤도에 올리지 못하면 야당의 결속 여하에 따라서는 일대 정계 개편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93년 정권 교체와 함께 정치개혁이 이루어졌듯이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세가 붙은 간 나오토(菅直人) 당수의 민주당이 시도할 야당 연합에 개혁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될지 모른다. 다만 민주당 등 야당은 단명으로 끝난 비자민 연립정권과, 포말로 끝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의 일본신당이 국민에게 심어준 실망감을 극복하고 정권 담당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어떻든 일본은 구조 개혁 국면에 들어서면서 정계 개편 과정이 재개되려 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개혁과 관련해 한일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국은 그 성격이나 정도는 다르지만 똑같이 경제 위기 해결과 구조 개혁이란 과제를 안고 있다. 구한말이나 해방 직후의 예가 상기시키듯 어느 한쪽이 개혁에 성공하고 다른 한쪽이 실패했을 때 한일 관계는 결코 순탄치 못할 것이다. 한일 양국 모두 개혁에 성공할 때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한일 관계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이 점에서 한일 양국의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서동만(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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