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산업은 국내 금융기관들이 주저없이 꼽는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생존가능성이 가장 높은’ 회사다. 주력품인 반도체검사장비 ‘테스트핸들러’분야에서 이 회사와 경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업체는 일본 어드밴테스트사 한개 정도.
지난해엔 6백15억원 어치를 팔아 1백83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테스트핸들러에 들어가는 2만2천개 부품의 대부분을 자체 개발한 것이고 해외주문까지 밀려있어 IMF한파는 커녕 IMF특수에 즐거운 비명이다.
“탁월한 예술가가 타고 나듯 훌륭한 엔지니어도 타고 납니다. 기술지향적 기업들이 가장 공을 들여야 할 부분은 바로 옥석(玉石)가리는 일이지요.”
정사장은 사람에 대한 투자가 오늘의 미래산업을 있게 한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사원채용시 마냥 명문대 출신을 찾지는 않는다.
부사장 등 회사내 서열 4위까지의 핵심인력이 모두 공고 출신. 공고 2학년생들을 받아들여 사람 됨됨이와 소질을 평가해보고 우수인재를 병역특례자로 남긴 뒤 해외유학을 보내는 나름의 채용방식을 10년째 고수하고 있다.
미래산업은 한국재벌의 관행인 ‘대물림 경영’을 배격한다. 회사엔 정사장의 가족은 물론 인척이 한명도 없다. 30대 초반의 큰 아들은 현대자동차 연구원, 둘째도 삼성맨이다.
정사장은 지난해 ‘회사 자산을 개인의 능력계발에 써도 좋다’고 약속했다. ‘기껏 키워온 인재들이 대기업에 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간부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훌륭한 인재를 기르면 회사가 저절로 잘돼 굳이 퇴사할 필요도 없게 된다”고 설득했다.
우리사주로 억대부자가 된 직원들이 수두룩하지만 사주를 팔고 퇴사한 직원은 거의 없다.
정사장은 중앙정보부(현 안기부)에서 19년동안 일한 뒤 83년 45세의 나이로 창업한 늦깎이다. 정보부 때 담당한 기획 관리능력은 창업에 큰 도움이 됐지만 은행 문턱을 넘어서는 데는 오히려 불리했다.
85년 한국종합기술금융에서 7억5천만원을 빌릴 때의 일.
“몇날을 걸려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받아든 사장이 ‘공무원, 그것도 정보부출신이 낸 사업계획을 어떻게 믿느냐’며 대출을 거부하는 거예요. 사장 상가(喪家) 등을 쫓아다니며 몇날을 설득한 끝에 겨우 돈을 빌렸습니다.”
정사장은 최근 ‘IMF체제를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혹스럽다. ‘평소처럼’ 회사를 경영해온 덕택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설명.
“사람을 가려쓰고 ‘실패도 용인하는’ 자율적인 기업문화가 임직원들의 ‘주인의식’과 창의성을 불러일으켜 강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이지요.”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