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명건/가족과 함께 지내지만…

  • 입력 1998년 7월 23일 19시 27분


“누추하고 비좁은 텐트에서라도 가족과 함께 지내니 의지가 됩니다. 포기했던 일자리 찾는 일도 다시 시작했어요.”

노모씨(43)는 부인 최모씨(30)와 함께 서울 서소문공원에서 2평 남짓한 텐트를 보금자리 삼아 수아양(7) 수인군(5) 남매를 키우고 있다.

대전에서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던 노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일거리가 ‘뚝’ 끊겼다. 궁리 끝에 이곳저곳에서 4백80만원을 빌려 포장마차를 차렸으나 이틀만에 도둑맞고 말았다.

노씨는 빚을 갚기 위해 3월초 가족을 남겨두고 서울에 왔다. 하지만 쉽사리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지난달 초 부인 최씨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생각에 남매를 데리고 노숙하는 남편을 찾아왔다.

노씨부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딸 수아를 다시 학교에 보내는 것.

노씨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어떻게든 딸 자식 하나는 학교에 못보내겠느냐”고 말하지만 표정은 밝지 않다.

한두달 전까지만 해도 노숙자는 실직한 30∼50대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노씨 가족처럼 가족단위로 노숙생활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공사현장의 철근공으로 일했던 이모씨(42)부부도 다섯살, 네살된 남매를 데리고 지난달 중순부터 서소문공원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일거리가 떨어지면서 이씨 가족은 두달 밀린 월세를 내지 못해 지난달 초 3평짜리 방에서 쫓겨났다.

‘홈리스 가족 자활프로그램’을 마련중인 사회복지재단 ‘사랑의 전화’ 사회복지사 장용석(張龍錫·29)씨는 “이들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한시적으로라도 월세나 생활비 등을 보조해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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