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새정부 햇볕론의 虛實

  • 입력 1998년 7월 23일 19시 28분


‘햇볕론’으로 일컬어지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햇볕론’에 대해 정부는 “북한이 스스로 개방하도록 이끄는, 현실적으로 최선의 정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북한에 양보만 하는 잘못된 유화정책의 전형”이라고 믿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같은 논란에 대해 몇가지 지적할 필요를 느낀다. 그것은 단순히 ‘햇볕론’을 지지해서, 또는 반대해서가 아니다. 이제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한번쯤 진지하게 되짚어 볼 때가 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햇볕론’에 대한 동아일보의 관심은 물론 분단극복 노력의 연장이다. 우리는 올해로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지만 남북간에 편지 한장 주고받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정주영(鄭周永)씨가 소떼를 끌고 판문점을 넘었을 때는 한가닥 기대감도 없지 않았지만 북한 잠수정이, 그리고 무장간첩의 시체가 동해 앞바다에서 발견됐을 때의 심정은 착잡했다. 지난 반세기, 우리는 무엇을 했기에 남북관계 하나 제대로 가꿔놓지 못했을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쏟아져 나왔던 그 숱한 이론과 정책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용어보다 내용이 중요▼

‘햇볕론’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름만 다를 뿐 보편적인 대북 화해, 포용정책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북한과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면서 북한이 스스로 개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정책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엄밀히 따지면 ‘햇볕론’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독창적 산물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가 그런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역대 정권의 대북정책에도 분명히 햇볕론적 요소가 있었다. 비록 북한의 호응이 없어서, 또는 당시의 국내 상황 때문에 강경정책이 주류를 이뤘을지는 몰라도 그 한편에 화해와 협력의 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만 하더라도 자주국방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겼지만 한편으론 7·4남북공동성명을 일궈냈다. 물론 7·4남북공동성명의 많은 부분이 국내 정치적 고려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늘 우리가 그를 대북 대결주의자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우리가 언제나 경계해야 할 점은 대북정책에 대한 양분론적인 시각이다. ‘햇볕론’을 강조하면 유화주의자, 안보를 강조하면 강경주의자로 마치 칼로 자르듯 남북문제를 보는 단순성의 함정이 경계대상이다. 이를 이용하고 편승하려드는 세력의 저의 또한 그렇다.

우리는 ‘햇볕론’을 외치는 사람의 심저(心底)에 혹 자신만이 진보적이고 통일지향적임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지는 않나 하는 측면도 살펴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햇볕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심저에 자신만이 국가안위를 걱정하고 상대방은 감상적 통일론에 빠져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려는 기도가 숨어있지는 않은지 되물어 봐야 한다.

따지고 보면 햇볕과 안보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어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햇볕론’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최상의 안보정책이다. 또한 안보야말로 ‘햇볕론’을 가능케 하는 으뜸가는 토대다. 그것은 ‘전쟁은 외교의 연속이고 외교는 전쟁의 연속’이란 오랜 잠언과도 통한다.

미국이 70, 80년대 소련과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일 때 한시라도 소련에 대한 힘의 우위를 잊은 적이 있었던가. 동시에, 소련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의 중요함을 한 순간이라도 잊은 적이 있었던가. 국가간의 관계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햇볕론’을 둘러싼 작금의 논쟁이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의미한 국력의 낭비일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우선 ‘햇볕론’이란 용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대북 화해, 포용정책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공연히 ‘햇볕’하니까 ‘맞바람’이 부는 것인데 상대방에게 공격의 표적을 제공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내용이고 실적이다.

▼對北포용 소명의식 가져야▼

우리는 그렇다고 ‘햇볕론’의 진의(眞意)를 알면서도 이를 무책임한 대북정책으로 낙인찍고 몰아가려는 데 대해서도 찬성하지 않는다. 냉전이 끝나고 남북간 체제경쟁이 사실상 끝난 상태에서 대북 화해, 포용정책 외에 다른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발행인으로서 본인은 일관되게 북한을 우리와 동등한 실체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또 동아일보가 통일을 향한 남북간의 가교(架橋)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어 왔다. 동아일보가 92년 9월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와 제휴협약을 맺었을 때 본인은 북한의 노동신문과도 빠른 시일내에 제휴가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도 있다.

세계사의 흐름은 확실히 대결보다는 화해쪽으로 가고 있다. 하물며 민족간의 관계에 있어서랴. 비록 그 과정에서 무한한 인내와 고통이 뒤따른다고 해도 대북 화해와 포용이 민족 통일의 염원을 갈망하는 이 시대 우리의 소명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본인은 이제 우리 모두가 이런 소명의식으로 남북문제를 보아줄 것을 충심으로 부탁드린다.

김병관<동아일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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