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름모자 벗기 게임(8)

  • 입력 1998년 7월 27일 19시 08분


제1장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다 ⑧

이사한 지 2주일 정도가 지나자 미흔은 아랫집의 애선이라는 여자를 알고 지내게 되었다. 그 여자는 친분을 갖게 되었다는 증거로 그 흥미로운 사건의 전모를 이야기해 주었다.

부희라는 여자가 대낮에 집 안방에서 간부와 정사를 나누다가, 낫을 바꾸러 들어온 시아버지에게 발각되자 간부와 함께 낫으로 시아버지를 찍어 죽인 사건이었다. 그 여자는 남편에게 시아버지가 자신을 덮치려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우직한 남편에게 죄를 덮어쓰도록 유도해 감옥에 보냈다가 심문 과정에서 모든 것이 탄로 나 간부와 함께 잡혀들어 갔다.

사건이 밝혀지자 그 집 남자는 경찰서에서 풀려 나왔는데, 완전히 얼이 빠진 상태였다. 남자는 그 와중에도 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 까봐 어느 날 살림살이도 거의 그대로 내버려둔 채 아이들만 데리고 도시에 있는 가난한 누나집 동네로 떠나버렸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사가기 사흘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지막까지 계속된 이야기거리는 부희와 그 간부가 형을 얼마나 받을까, 하는 논란이었다.

여자들과 나이 든 노인들은 그들이 지은 죄를 보아서 최소한 무기형은 받아야 마땅할 것이고 어쩌면 교수형을 받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고 이장이나 농지위원들과 포도 농장에 다니는 일부 남자들은 어쩌면 자기 방어가 인정되어 형이 가벼워져 곧 석방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수는 못 아래 마을에 있는 학교 병설 유치원에 입학시켰다. 교무실 뒤편 급식실 곁의 두 개 교실이 유치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5세 6세 7세인 11명의 아이들이 유치원 반의 전부였다. 여교사는 임신 중이었는데,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다니는 사람처럼 둔감해 보였다. 키가 크고, 피부가 몹시 희고 고왔다.

회비는 놀랍도록 쌌다. 3개월 회비를 한꺼번에 내는데 1만5천원, 급식료는 매달 1만2천원이 전부였다. 도시의 유치원 한 달 회비는 9만6천원이었고, 급식비가 월 2만원, 교통비가 월 5천원이었다.

첫 한달동안 미흔은 나와 수가 빠져나간 집에서 여전히 커튼을 두껍게 치고 오전에는 잠만 자는 것 같았다. 오후 2시에는 수를 데리러 학교에 가야 했다. 나는 아내가 타고 다닐 차를 아는 사람을 통해 싸게 사들였다. 중고이긴 했지만 겨우 4만㎞를 달렸을 뿐인 아직 깨끗하고 길이 잘든 청색 스쿠프였다. 그러나 아내는 차에도 흥미가 없었다. 헹구어 말린 듯이 푸르고 맑은 시골 풍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를 데려다 놓고난 뒤 또 자는 것 같았다.

그 날은 토요일 저녁이었다. 주위는 어두워졌는데, 집엔 불도 켜지 않아 깜깜해 언덕을 올라가는 동안 긴장이 되었다. 차를 현관 앞에 세운 채 현관문을 미니 술렁 열렸다. 우선 불을 켰다. 거실 바닥은 가히 어질러진 집이라는 이름의 전시장 같았다. 소파 위엔 부서진 비스킷가루와 온갖 종류의 장난감 자동차들이 뒤섞여 있고 바닥엔 빗자루와 쓰레기받이, 바람의 모습처럼 길게 풀어진 두루말이 화장지, 쏟아진 낱말 카드, 벽돌처럼 높이 쌓아올려져 있는 동화책들, 내던져진 봉걸레, 소형 오락기. 실내화 한 짝, 찢어진 종이 가방, 터진 풍선 파편들, 쏟아진 씨리얼, 그리고 모래가 뒤섞인 레고박스… 나는 마음이 불안해 허둥지둥 방문들을 열었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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