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회담에서 러시아측은 추방된 자국 정보외교관의 재입국을 기습적으로 제기했다. 우리 외통부와 안기부가 상대방 움직임을 눈치도 못챈 채 안이하게 대비한 데는 별도의 문책이 뒤따라야겠지만 러시아측의 일방적 공세는 외교상식을 벗어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관계는 서로의 국익을 바탕으로 진전돼 나가야 옳다. 러시아는 이를 무시했다. 이면합의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한국측이 강력히 부인하는 내용을 합의했다고 공표한 배경이 궁금하다. 설혹 이면합의가 있었더라도 그것을 공개하는 행위는 외교관례상 상식밖이다.
외무장관 회담에서 중요한 합의사항이 있을 때는 공동회견을 통해 함께 발표하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공동발표로 밝히지 못할 이면합의가 없었는데도 이를 있었던 것처럼 발표했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상대국의 위신과 명예를 짓밟았기 때문에 그냥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러시아에 항의했다지만 그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러시아측의 발언취소와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당초 우리는 러시아를 한반도 주변 4열강중 하나로 비중있게 대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상호 국익증진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보완하자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주변국들의 안보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리의 기대를 짓밟았다.
정부는 이면합의 여부에 관해 책임있는 해명을 해야 한다.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아닐지라도 양국 정보당국간 막후접촉에서 그런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많다. 이젠 상대측이 공개한 비밀이다. 국가체통이 땅에 떨어진 마당에 우리 국민만 잘못 알고 있다면 국제사회에서 또 한번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낱낱이 밝히고 그 결과에 따라 응분의 문책을 해야 한다.
이번의 한―러갈등은 새 정부 들어 최대의 외교실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측 발언이 거짓이라면 공식취소돼야 우리의 실추된 국가위신이 회복된다는 점을 정부는 명심하기 바란다. 원칙과 국제관행에 어긋나는 러시아의 무례 앞에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면 정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구독 23
구독
구독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