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됐는가. 첫째는 야당과 여당의 차이다. 야당 때는 당이 전부였다. 총재도 당에 있었다. 그러나 여당은 여권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총재는 청와대에 있다. 총재공백의 영향은 크다.
둘째는 인력의 한계다. 국민회의는 애당초 인적 구성이 취약했다. 그런 터에 집권하자 쓸만한 사람 상당수가 정부와 산하기관 등으로 빠져나갔다. 당의 인력구조는 작은 보자기에 여기저기 구멍까지 뚫린 꼴이 됐다.
셋째는 긴장감의 이완이다. 특히 일부 호남 국회의원들이 그렇다. 사실상의 일당체제에 안주해온 데다 정권까지 잡은 결과일까. 그들의 발상은 유권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는 말뚝만 보고는 못 찍겠다는데도 그들은 아무 말뚝이나 꼽아 12개 시장 군수를 잃었다.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저질렀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단기적 해결책은 당력을 총동원하고 긴장감을 회복할 수 있게 중앙당 진용과 운영방식을 바로잡는 것이다. 외부역량의 수혈과 연계도 실효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국민회의는 우선 취약지역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을 교체하겠다지만,그것은 본사가 급한데 변두리 지사장을 바꾸는 것과 같다.
중장기적으로는 선거제도 개혁과 국회의원의 대담한 물갈이가 필요하다. 그것이 당을 전국정당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발이 될 수 있다. 좋은 ‘산토끼’가 접근하게 하려면 우선 ‘집토끼’가 좋아야 한다.
중요한 해결책은 또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당을 다시 보는 것이다. 그동안 김대통령은 당을 경시했다는 불만이 당에 많다. 몇몇 측근을 통해 당을 관리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전임대통령들처럼 거친 당보다 매끄러운 관료들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는 말도 들린다. 정부에서처럼 당에 대해서도 ‘모든 것은 내가 한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당이 개혁추진에서 배제된 것은 김대통령의 그런 자세에서 상당부분 기인한 것 같다. 개혁이 국민에게 충분히 흡수되지 못하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일상적으로 국민과 접촉하는 것은 정당이고, 국민에게 인상을 심는 것은 정치판의 전개이기 때문이다. 그 대가는 김대통령에게 돌아가고 있다. 여당이 먹는 욕은 대통령에게 옮아가게 돼있다. 당내에 개혁추진위가 곧 구성되지만 그 성패도 김대통령에게 달렸고,그 결과 또한 김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이다.
김영삼(金泳三)정권의 추락은 김대중대통령의 영국유학에서 연유했다는 해석이 있다. 야당을 이기택(李基澤)씨가 맡자 김영삼대통령은 정치권을 우습게 보고 ‘깜짝쇼’에 빠졌다. 그것이 몰락의 시작이었다는 얘기다. 고르바초프의 경우도 되새길 만하다. 그는 세계사적 개혁업적을 남기고도 맥없이 무너졌다. 개혁에 따른 저항으로부터 권력을 지킬 역량이 약했기 때문이다.
대수술이 그렇듯이 개혁도 지탱하는 힘이 있어야 성공한다. 그런 힘이 최소한의 정치력이다. 지탱은 정치집단이 할 수 있다.
이낙연<논설위원>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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