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래정/「재벌의 심경」

  • 입력 1998년 7월 29일 19시 35분


국제통화기금(IMF)처방에 따라 안팎으로 지탄을 받았던 한국재벌의 과다차입이 드디어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29일 공개된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결과 재벌의 무분별한 차입 실상과 불공정한 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정말 ‘이럴 수가…’하는 경악속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재벌에 대한 응징적 여론이 비등해지는 것도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냉정히 한번 생각해 보자. 한 재벌총수는 얼마전 사석에서 “방송에 나가 몇날이고 시청자들과 재벌의 공과(功過)를 토론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나라경제를 망친 주범으로 매도만 당하는 데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가까이서 본 재벌총수는 일부 2세 재벌을 제외하면 대체로 억척스럽게 일한다.

물론 그들이 매달렸던 ‘일’들이 모두 경제에 도움을 준 것은 아니다. 부화뇌동식으로 벌여놓은 사업, 부실을 ‘평가이익’으로 덧씌우며 남의 돈을 자기 것처럼 썼던 회계관행들….

재벌들은 이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천연자원 축적자본도 없이 압축성장을 강요받던 시절에 재벌식 경영이 아니었다면 이정도의 경제발전이 가능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현 정권의 개혁작업을 과거 정권 때처럼 ‘길들이기’로 평가하는 재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정부는 재벌들의 능동적인 협조를 여전히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의 주역을 자임했던 재벌들이 개혁에 동참할 자랑스러운 ‘명분’을 찾지 못한 탓이다.

지난 반년 동안 개혁에 소리없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재벌의 공(功)’을 가감없이 평가해주길 바라는 재벌사 임직원들의 ‘침묵’의 의미도 읽을 필요가 있을것 같다.

박래정<정보산업부>eco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