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민간査察」판결이후

  • 입력 1998년 7월 29일 19시 35분


‘안경착용. 반백머리에 순하게 생김. 재미교포같이 말을 더듬거림. 담장은 시멘트담 1.5m. 가옥 우측 및 뒤쪽이 산. 출입구는 유치원과 함께 사용하며 비상구 없음’ ‘외고집에 타협 모르며 매사에 도전적 반항적. 신도로부터는 존경받고 있으며 금전에 관심 없고 저돌적. 깡패신부로 불림’. 90년10월 보안사의 민간인 불법사찰 폭로사건 때 드러난 야당정치인과 신부의 사찰카드 기록내용이다.

▼사찰대상자는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씨와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을 비롯한 1천3백여명.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교수 재야인사 등 각계 인사가 망라돼 있었다. 모두 A B C D 4등급으로 분류돼 김영삼 221, 김대중 283, 이런 식으로 고유번호가 부여됐다. 신상자료에는 가족 경력 전과 해외여행 개인특성은 물론 집구조 예상도주로와 발언내용, 접촉인물에 관한 상세한 동향과 분석이 포함됐다.

▼누가 봐도 보안사의 월권행위임을 금세 알 수 있었고, 보안사를 정보정치의 수단으로 악용한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당시 국방부 반응은 엉뚱했다. “유사시 적 또는 불순세력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려고 ….” 정치개입과 권력의 맛을 쉽게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자 뒤늦게 국방장관 보안사령관이 문책경질됐다.그리고 이름을 기무사로 바꾸는 선에서 일단락지었다.

▼그 사찰대상자 중 1백4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이 7년만에 원고들의 승리로 끝났다. 배상액은 2백만원씩. 사생활비밀 침해 정도에 비하면 액수는 미미하나 선언적 의미는 크다. 민간인사찰은 군관련 첩보수집과 수사활동이라는 직무범위를 넘은 불법이라는 취지다. 문제는 또 있다. 민간인사찰이 혹시 지금도 진행형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과 국민세금으로 부담할 배상액을 사찰 책임자에게 물리는 일이다.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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