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뒷북치는 기상예보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기상청은 지난달 31일밤과 1일 새벽 사이 호우주의보와 경보를 내렸으나 경보와 거의 동시에 지리산 일대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피아골 뱀사골 등 계곡에 텐트를 친 야영객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해 피해가 커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기상청은 주의보에 앞서 남부지방에 10∼50㎜의 비를 예보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과 몇시간만에 1백∼3백㎜의 장대비가 내렸다. 중국에서 다가온 기압골이 지리산이라는 특이한 지형을 만난 것이 빗나간 예보의 원인이라지만 기상대의 예측능력이 그 정도에 불과한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임을 장비부족 등에 돌릴 수만은 없다.
재해대책본부 역시 기상청과의 책임공방에 열을 올리는 한심한 자세를 보였다. 기상청은 대책본부에 몇차례나 사전에 주의를 촉구했다고 주장한 반면 대책본부는 정식으로 기상특보를 내리지 않았음을 탓했다. 지리산국립공원 내 경보시스템도 가동되지 않았다는 보도다. 특히 국립공원측은 야영장이 아닌 계곡에 텐트를 친 사람들을 제때 대피시키지 않아 피해를 키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도대체 재난구조체계의 각 단계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역할한 것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야영객 본인들의 부주의도 참사의 한 원인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등산을 하거나 계곡 주변에서 야영할 때는 급격한 기후변화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이 빨리 불어날 수 있는 물가를 피해 정해진 야영장을 이용하고 기상예보를 듣기 위한 소형 라디오와 간단한 구조장비를 휴대하는 것도 필수다. 이런 기본요령을 외면한 야영객들의 안전불감증에도 문제가 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재난구조체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예보와 재난구조과정에서 잘못이 드러난 관계자를 문책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단 한명의 인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애쓴 구조대원들의 노고가 빛바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을 던져 야영객을 구한 119 구조대원 이정근씨의 희생정신은 길이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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