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차웅/지리산의 살신義人

  • 입력 1998년 8월 3일 19시 25분


올해는 물난리 없이 넘어가나 했더니 장마 끝물에 어이없는 참사가 닥쳤다. 지리산계곡에서 야영하던 피서객들이 한밤중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1백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희생자 중에는 ‘IMF 알뜰피서’를 위해 가족과 함께 지리산계곡을 찾아 텐트를 친 사람이 많다고 한다. 개중에는 실직자가족도 있었을 것이다. 가슴아픈 일이다.

▼무엇보다 ‘국립공원’에서 이런 참사가 났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위험한 계곡 물가에 마구 텐트를 치는데도 단속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전경보도 울리지 않았고 사후 긴급대응태세도 없었다. 요컨대 관리시스템 부재가 부른 인재(人災)였다. 이러고도 국립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많은 현지 주민들과 군인 공무원들이 보인 구조활동이다. 119구조대원들과 소방대원들의 활동도 돋보였다. 이들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야영객들을 깨워 대피시키거나 물에 휩쓸린 사람을 구하느라 밤을 새웠다. 목숨을 건 구조활동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구조활동 중 희생자가 나왔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려다 숨진 이들 의인(義人)이야말로 이 시대의 영웅이다.

▼눈앞의 불의를 보고도 못본 체하거나 신고하기조차 꺼리는 각박한 세상에서 이들의 희생정신은 더욱 빛난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그나마 우리 사회가 지탱되고 있는지 모른다. 미국인들은 얼마 전 미국 의사당 총기난사 때 숨진 두 명의 경찰관을 ‘미국의 영웅’으로 극진하게 예우했다. 클린턴대통령은 물론 3부요인이 모두 영결식에 참석, 고인들을 추모했다. 우리도 ‘지리산 의인들’에 대한 국민적 추모가 있어야겠다. 단순히 훈 포장만 주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김차웅 논설위원〉cha4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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