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고재은/사과 제값받아 두분 활짝 웃었으면

  • 입력 1998년 8월 3일 19시 26분


주머니 사정으로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청과물 상회에서 오늘 푸른색 아오리 사과를 발견했어요. 고향집에 전화를 걸어보니 벌써 여름사과를 첫 출하했다고 하더군요. 원예학과를 나온 큰 오빠가 저질러버린 과수원 농사. 그러나 뼈빠지게 일해도 일꾼들 품삯과 비료대금을 제하고 나면 몇푼 떨어지지 않는 현실에 오빠는 잘 적응하지 못했지요.

사과와 배를 실컷 먹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 “과수원하면 참 좋겠다”고 했던 저도 대학에 가야 한다며 고향을 떠났습니다.

올 4월. 발령대기를 무작정 기다리기도 뭣해 다시 찾은 고향. 한창 과수원에서 사과꽃 봉오리를 따느라 바빴지요. ‘사과꽃 향기’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분위기가 있지만 직접 따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진딧물에 친 유황 때문에 눈은 따갑고 재채기는 왜 그리 나던지. 종일 뙤약볕 아래서 일하다 보니 한창 젊은 저도 온 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어머니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아려 옵니다. 사과값이 좋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신문에서 읽었어요. 아무쪼록 제 값을 받아 두분 모두 굽은 허리 펴시고 환히 웃으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고재은(경기 고양시 일산구 일산3동 후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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