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젠 프로외교를

  • 입력 1998년 8월 4일 19시 35분


박정수(朴定洙)외교통상부장관이 전격 경질됐다. 출범 6개월째인 김대중(金大中)정부의 두번째 각료교체다. 그러나 업무관련 문책경질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루 전만해도 외교안보팀에 대한 문책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하던 정부다. 갑작스러운 인사 배경이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러시아와 빚은 외교갈등을 생각하면 이번 경질은 불가피해 보인다. 공직자들이 실책에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정부는 한―러간 정보외교관 맞추방 사건에서 “우리가 잘못한 것은 없다”고 했지만 국민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기피인물로 추방한 러시아외교관의 재입국을 허용하느니 마느니 하며 혼선을 빚은 것부터 그렇다. 아직도 재입국 허용의 이면합의 여부에 대해서는 사실 자체가 불투명하다. 외통부와 안기부 사이의 업무갈등이 혼선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가 아무리 변명해도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이고 우롱한 꼴이 됐다.

대(對)러시아 외교에도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이제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냉전시대처럼 북한을 의식한 러시아외교는 항상 북한변수에 제한을 받는 ‘반쪽외교’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외교관 맞추방과정이나 마닐라 한―러외무장관회담 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이유도 그같은 ‘반쪽외교’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북한변수에 묶이다보니 러시아 외교의 실체 등에 대한 대책이나 협상의 사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한마디로 러시아를 잘 몰랐던 것이다.

외교는 어느 분야보다도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철저한 프로정신과 유연성을 갖추지 못한 외교관은 요즈음과 같은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한―러 외교관 맞추방사건은 김대중정부가 처음 맛본 심각한 외교적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그 실패의 큰 원인은 세련되고 수완있는 프로 외교관이 대러시아협상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직업외교관 출신이 아닌 정치인의 외교직 등용은 그래서 항상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신임 홍순영(洪淳瑛)장관은 정무와 통상 모두에 정통한 직업외교관 출신이다. 더구나 과거 러시아대사 경력이 이번 발탁의 배경이 됐다는 후문이다. 외교관 맞추방사건으로 상처를 입은 한―러관계는 한반도와 러시아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도 빠른 시일 안에 정상화돼야 한다. 이제는 러시아와 국제사회에서 정정당당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때다. 무엇보다 동등하고 건전한 한―러관계 구축이 시급하다. 새 장관의 역량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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