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경달/지리산 「반바지 등반」

  • 입력 1998년 8월 4일 19시 35분


지리산 계곡 아래 하천, 처박힌 차 안에서 어린이의 시체가 들려나온다. 하천변 바위틈과 덤불 속에서도 야영객들의 시신이 하나둘씩 발견되고 있다.

시체를 부여잡고 통곡하는 유족들을 지켜보면서 ‘무엇이 이토록 큰 재해를 불렀나’하는 생각과 함께 ‘과연 막을 수 없는 재해였나’하는 의문이 든다.

생존한 야영객들은 하나같이 “물이 ‘서서’ 덮쳤고 눈깜짝할 사이에 아수라장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계곡물과 강물이 순식간에 불어나 ‘물머리’가 생겼다는 증언이다. 피아골에서는 집채만한 바위가 사라졌다는 주민의 목격담도 있다.

사방으로 길이 나고 도로도 잘뚫린 해발 1천9백15m의 지리산 자락에서 1백여명의 사상자가 난다면 높은 산이 많은 외국에서는 어떻게 자연재난에 대처하고 있을까.

대부분 기상변화에 재빨리 대응, 입산통제를 철저히 한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등산객들에게 소형라디오를 나눠주고 기상레이더를 통해 급변하는 산악의 기상을 알려줘 악천후가 닥칠 때 곧바로 대피하도록 조처하기도 한다.

또 일본 군마(群馬)현에서는 등산객이 산행코스까지 표시한 입장신고서 작성은 물론 산 입구의 수거함 두 곳에 입장권 반쪽씩을 등하산시에 자율적으로 넣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참사를 보며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등산객들의 ‘의식’이다. 보름전쯤에 지리산에 올랐던 서울산악연맹의 서성식(徐聖植)씨는 “강심장을 여럿 만났다”고 털어놓았다. 반바지 차림으로 ‘앞산 소풍가듯’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지리산은 ‘물놀이’하는 데가 아니라 ‘등산’하는 곳”이라는 이곳 토박이들의 말이 새삼스레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김경달<사회부>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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