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름모자 벗기 게임(18)

  • 입력 1998년 8월 7일 19시 25분


제1장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다 (18)

미흔은 부엌 바닥으로 쓰러지고 내가 어어, 하는 사이 영우는 손의 붉은 봉투로 한번 더 미흔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그 봉투 속엔 유럽 여행을 하고 돌아 온 친구가 준 선물이 들어 있었다. 스위스제 접는 칼 세트. 말이 칼이지 쇠뭉치나 다름없었다. 영우도 몰랐을 것이다. 그 봉투 속에 칼이 들어 있었다는 것은. 그저 흥분한 나머지 아무것이나, 장식장 위에 올려져 있던 붉은 종이 봉투를 휘둘렀을 것이다.

‘내게도 권리가 있어…. 우린 서로를 사랑해…. 넌 네가 행복한 줄로 알고 있지만 그건 니가 모른다는 뜻일 뿐이야. 넌 아무것도 몰라….’

영우는 와들와들 떨며 중얼거렸다. 나는 봉투를 빼앗아 들었다. 미흔은 여전히 한쪽 팔로 부엌 바닥을 짚고 한쪽 손으로는 머리를 감싼 채 두 눈을 꽉 감고 온 몸을 떨고만 있었다.

몸을 안아 올리자 미흔의 두 눈속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있었다. 미흔을 침대에 눕히자마자 영우를 현관 쪽으로 밀치고 갔다.

‘오빠…, 오빠…’

영우는 부들부들 떨며 오빠라고만 중얼거렸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나는 영우를 난폭하게 바깥으로 밀어 냈다. 그리고 뒷목을 꽉 눌러 쥔 채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 속으로 왈칵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동안 영우는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린 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사정하듯이 나를 보았다.

미흔의 얼굴 한쪽은 순간순간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다행히 얼굴에 직접적인 상처는 없었다. 이마 위의 혈관이 터질 듯이 튀어나와 있었다. 내가 손을 뻗자 미흔은 거세게 뿌리쳤다.

‘나가.’

미흔이 입을 벌린 순간에 눈물이 터져나왔다. 나는 미흔의 두 팔을 한 손으로 쥐고 부풀어 오르는 머리카락 속에 손을 넣어보았다. 왼쪽 귀 윗부분과 정수리였다. 정수리에서는 약간의 피가 묻어났다. 출혈은 차라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그러나 왼쪽 머리와 얼굴 한쪽이 무서운 속도로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일어나. 병원에 가자.’

나는 미흔을 일으켜 앉혔다. 그러자 미흔이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집안의 유리 문들이 다 깨어지는 듯한 끔찍하고 긴 비명이었다. 미흔의 눈엔 눈물이 마구 넘쳤다. 눈물이라기보다는 외상으로 인해 몸 속의 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변명을 해 봐. 이렇게 묻는 건 지금 뿐이야. 어떻게 된 일인지 해명을 해.’

얼굴 반쪽이 커다랗게 부풀어올라 완전히 뒤틀려 버린 모습으로 미흔이 악을 썼다. 사람 얼굴이 그렇게 순간순간 변하는 물질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미흔이 정신을 잃어버렸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미흔이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물었다.

‘언제부터 잤어?’

‘……’

나는 고개를 저었다. 뻣뻣한 목을 힘껏 저었으나 목에서 아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훨씬 더 최악의 상상을 하게 돼.’

‘6개월쯤 전부터야.’

나는 당황한 나머지 단순하게 말했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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