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재/누굴 위한 수출간담회인가?

  • 입력 1998년 8월 12일 19시 25분


“자리나 지키고 밥이나 먹으려고 나온 셈이 돼버렸군요. 오늘 왜 이 자리에 나왔는지 참 한심합니다.”

11일 무역회관에서 열린 수출지원 간담회에 참석한 한 기업인의 푸념이다.

자민련 주최 모임인 이 행사는 39명이나 참석한 ‘매머드급’ 모임. 자민련총재 외교통상본부장 재정경제부차관 등 그 면면이 대단했다. “획기적인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거창한 개회사도 기업인들의 기대를 부풀렸다. 수출기업 대표들은 이날 단단히 준비한 듯 요구사항들을 토로했다.

“환율이 불안해 안심하고 수출을 할 수 없다” “정부말 따로, 은행창구 따로인 현실을 바로잡아 달라.”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녹음기 틀듯’ 그동안 숱하게 들어온 상투적인 말뿐이었다.

“검토하겠다” “어려운 줄 알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정책 금융 당국 책임자급들이 나왔지만 속시원한 해결책이나 아이디어 하나 제시하지 못했다.

이날 모임이 이렇게 ‘부실’로 흐른데는 무엇보다 간담회가 자민련측 요구로 일주일만에 부랴부랴 급조됐다는 점. 준비기간이 짧다 보니 간담회는 무역협회가 준비한 문건 하나 달랑 갖고 벼락공부하는 식이었다. 자민련 의원들의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들은 15분이나 지각, 회의시작을 늦추더니 몇몇은 농담성 발언으로 일관했다.

“수출을 살리려면 우리 자민련을 밀어줘야 한다” “여기 나온 업체들한테는 특별히 50억원씩 지원해줘라.”

기업 대표들은 할말이 많은 듯 했지만 오찬 예정시간이 되자 자민련측 사회자가 말을 막았다.

“우리는 충남 수해현장을 둘러보러 가야 하니 식사하면서 토론합시다.”

이날 모임은 수출업계와 자민련,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리송해졌다.

이명재<정보산업부>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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