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러운 것은 새 정부의 고등교육 개혁의지가 확고부동하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뿐만 아니라 수차에 걸쳐 교육개혁의 의지를 분명히 천명한 바 있다.
▼ 우등생 개념 바뀌어야 ▼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이 난마와 같이 얽히게 된 근본 원인중 첫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은 대학 입학 전형제도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은 성적순으로 ‘한줄 세우기’ 방식이었다.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교육은 대입 중요과목 중심으로 파행에 이르렀고 인성교육은 한낱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러한 성적위주의 입학제도는 엄청난 사교육비 문제를 야기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대학들마다 다양하고 새로운 신입생 선발방법을 고안해 내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며 대학들이 문제해결에 팔을 걷고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기 선발제도, 특기자 전형, 장애인 농어촌학생 사회적 배려자(예를 들어 벽지근무 공무원이나 장기복무 군하사관 자녀)들을 위한 특별전형, 취업자전형 등 여러가지 대입 전형방법이 앞다투어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전형방법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무시험 전형제’다. 지난달 3일 개최된 전국대학총장협의회에서 총장들은 무시험 전형제 확대를 선언했고 뒤이어 몇몇 대학이 무시험 전형을 2002학년도 신입생부터 전면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새로운 전형방법에서는 학교 성적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기간 중의 특기 과외활동 봉사활동 등 학생 생활 전체가 평가의 기본 자료가 된다. 따라서 무시험 전형제가 중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고 전인적인 인성교육에도 획기적으로 기여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또한 사교육비 문제 해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시험 전형제도가 성공적으로 실시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선행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첫째, ‘우수한 학생’에 대한 개념이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 시험성적 우수자가 곧 우수한 학생이라는 개념은 지금까지 산업사회의 획일적인 대량생산양식에는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점수만을 중시하는 입시위주 교육으로는 창의성과 개성있는 우수 인재를 양성하기 어렵다.
앞으로 닥쳐올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다품종 소량 생산양식이 중요해진다. 따라서 교육에서도 성적뿐만 아니라 다양한 특기 소질 학생활동 인성 등 여러 가치들이 함께 존중되는 개성있는 인재양성이 요청된다. 우수학생의 개념도 이같이 다변화되어야 하고 종합적인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대학들도 획일주의 일변도에서 벗어나 특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대학은 특성에 맞게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각기 특색있는 전형방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학 특성에 맞게 학생들을 여러줄로 세워 선발해야 하며 한가지만 특별히 잘하는 학생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 ‘한국의 빌 게이츠’를 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고등학교는 새로운 입학 환경에 맞춰 수업과 평가방법을 바꿔 나가고 시험성적만을 올리기에 몰두하던 모든 제도를 혁파하며 학생들의 소질과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촌지 치맛바람 등 부작용의 우려를 씻어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도 마련돼야 한다. 교육현장 못지않게 학부모들도 시험성적 위주의 의식에서 벗어나 자녀들의 창의성과 특성을 북돋워주고 사교육에 열을 올리기보다 학교에 교육을 맡기는 성숙한 의식이 필요하다.
▼ 대학특성 살려 선발을 ▼
마지막으로 정부는 무시험전형제를 계기로 교육혁명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는 여러가지 요인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통해 장애요인을 제거하며 교육현장이 바르게 바뀔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 행정 재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육부의 인력수급자료에 따르면 2002년에는 대입정원이 고졸학생 숫자와 같아지고 2003년이면 오히려 대입정원이 8만명이나 남는다고 한다. 이러한 입학환경 변화는 교육개혁을 꽃피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각계가 협력해 앞으로 수년간 올바른 경험을 쌓아 나간다면 무시험전형제가 정착되고 중등교육도 정상화될 것이다.
박준서(연세대 교학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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