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변계숙/『틀니때문에 힘드신것 몰랐어요』

  • 입력 1998년 8월 18일 19시 41분


올해는 물난리로 고생이지만 몇해전인가 가뭄으로 땅이 타들어갔던 적이 있었죠. 그때 어머니께서 제게 들려주신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산넘어 콩밭이 걱정되어 가보니 땅이 갈라지고 있더라. 하루종일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한포기 한포기 적셔 줬단다. 하지만 그 다음날 가보니 모두 쓰러져 있더라. 얼마나 속이 상한지 밭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러니 콩 한 알도 아껴 먹어라.”

엄마. 요 며칠 치과에 다녀요. 오래전 해 넣은 틀니를 갈 때가 되어서요. 견딜 만한 아픔인데 오늘은 치료 도중 자꾸 눈물이 났어요. 어른이 운다고 흉볼까봐 울음을 참으려 해도 안됐어요. 의사선생님은 치료 부위를 휴지로 닦아 주시고 나서 치료가 아팠느냐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 보셨어요. 하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고 창피해서 고개만 흔들었어요.

엄마. 왜 눈물이 났는지 아세요. 갑자기 엄마 틀니가 생각났기 때문이에요. 앞니 두개만 남기고 나머지 모두 틀니를 하셨죠. 그때 아프고 힘들다는 말씀을 하셔도 저는 마음으로 듣지 않았어요. 또 답답하다고 틀니를 빼셨을때 보기 흉하고 할머니 같다고 말했죠. 엄마. 이젠 틀니를 빼고 있어도 아무말 않고 웃을 거예요.

변계숙(서울 동작구 상도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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