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현진/정치권 개입의 후유증

  • 입력 1998년 8월 23일 19시 07분


현대자동차 노사문제가 엄청난 진통 끝에 해결의 실마리를 찻아가는데는 이달초부터 울산을 방문해 양측을 중재한 정치권의 노력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국내외 시각은 긍정적인 쪽보다는 부정적인 쪽이 우세한 것 같다. 정치권의 현대자동차 문제 관여에 부정적인 논리의 근거는 ‘원칙론’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원칙에 합의했으면 원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단순명쾌한 논리다.

“정치권은 노사정위원회의 존속을 위해 지나치게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정리해고 문제는 노사간에 원칙대로 처리할 일인데도 정치권이 개별기업의 문제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다.”(한국개발연구원 관계자)

특히 주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들은 “앞으로 현대자동차와 같이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개별사업장의 분쟁이 잇따를텐데 그때마다 정치권이 중재에 나설 것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이들은 또 정리해고 규모가 당초 1천6백여명에서 3백명 선으로 후퇴한 것에 대해서도 “해고규모가 비정상적으로 줄었다”며 그 과정에서 정치권의 입김이 지나치게 작용했음을 비판한다. 정치권 논리가 구조조정 논리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현대자동차의 경우가 선례로 작용해 앞으로의 외국인 투자와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얘기들이다.

결국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처음 시도하는 사(使)측, 합의된 원칙을 무시하고 있는 노정(勞政)의 합작이 빚어낸 현대자동차 사태는 타결 후에도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우려된다.우리나라의 해외채권 값이 21일 전례없이 폭락한 것은 한국의 노동권과 정치권을 주시해온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신감 증폭에도 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현진<정치부>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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