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최소한 다섯 가지나 없다. 전당대회는 그것을 따져서 채우는 기회가 돼야 한다. 집권경험과 재집권 실패라는 특별함 때문에 한나라당은 따지고 채워야 할 것이 과거 야당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리멸렬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첫째, 한나라당에는 반성이 없다. 역대 대통령 직선에서 기호 1번을 달고 처음으로 패배했으면 그만한 반성과 자책이 따랐어야 옳다. 특정인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당으로서 마땅히 그런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없다. 그렇게 큰 실패를 정리하지 않고 어떻게 미래를 그릴 수 있는가. 당명(黨名) 개정론이 또 나오지만 그런 것만으로 과거를 얼버무릴 수 있겠는가.
둘째, 염치가 없다.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당내 의원을 일단 감쌀 수는 있다. 그러나 비리혐의가 드러난 의원 한 사람의 구속을 막기 위해 임시국회를 단독소집해 공전시킨 일이 몇 번인가. 국정경험을 가졌다는 집단이 그렇게 사법절차를 방해하고 국회를 악용해도 좋은가. 비리의원들을 부둥켜안고 있으면서 개혁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인가.
셋째, 원칙이 없다.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에 대해 처음에는 표결 자체를 거부했다. 다음에는 반대입장을 세우고 사실상 공개투표를 하다가 여당의 물리력에 의해 중단됐다. 지난주에는 의원들의 자유투표에 맡겨 동의안을 통과시켜 주었다.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당내에 딴 생각을 가진 의원이 꽤 많고, 그래서 거대야당도 허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 말고 무슨 소득이 있는가.
넷째, 당론이 없다. 정부가 사상전향제를 폐지하고 준법서약서로 대치한다고 발표하자 한나라당 대변인은 보수적 견지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당내에는 준법서약서도 내면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진보적 의견을 가진 의원이 적지 않다. 어느 쪽이 당론인가. 당론을 모으는 절차도 없었던 것은 아닌가.
다섯째, 비전이 없다. 정부에 반대한다면 정부의 무엇에, 그리고 왜 반대하며 대안은 무엇인지가 분명치 않다. 중장기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와 반(反) 민주의 대립구도가 끝났고 냉전구조도 엷어진 이 시대의 야당이 찾아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역감정과 반 DJ정서를 팔아 그때그때 선거나 치르는 야당으로는 안된다.
31일 전당대회가 총재를 새로 뽑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큰 의미가 없다. 어떤 야당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고는 누가 당권을 잡건 당이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다. 당권경쟁자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면 대의원들이 끌고가야 한다.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 것인가. 전당대회는 기대와 의문을 동시에 갖게 한다.
이낙연<논설위원>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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