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차를 몰고가던 남자는 고갯마루의 휴게소로 갑자기 꺾어 들어갔다. 이상한 휴게소였다. 슬래브를 친 작은 건물은 볼품없이 낡았고, 푸른 이끼와 녹물로 얼룩이 져 있었다. 건물의 머리에 검은 색 페인트로 그저 휴게소라고 쓰여져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건물에 비해 그늘을 드리운 샛노란색 차양들이나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인 등나무 그늘, 잔디밭 위에 놓인 흰색 비치 파라솔이 꽂힌 테이블들과 잔디 위의 나무들, 무궁화나무 울타리와 초록색 격자 창문으로 만들어진 공중전화 박스가 그 결핍감을 메우고 자연스러운 정취를 자아냈다.
―커피 한 잔 할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가 비어 있는 등나무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유독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휴게소로 들어가니 실내는 좀 가난하고 평화로운 가정집 같은 분위기였다. 문을 열자 커피 향기가 몰려나왔다. 문 양 옆에 홀과 부엌이 나뉘어 있고 그 안쪽엔 스낵과 음료수, 담배와 간단한 문구류 따위가 진열된 홀과 댓돌에 아이들 슬리퍼가 뒤집어져 있는 커다란 방 하나가 있었다. 홀의 테이블에는 이제 막 손님이 빠져나갔는지 국수 그릇들이 널려 있고 벽에는 라면, 국수, 김밥이라고 쓴 메뉴판이 붙어 있었다. 커피 머신과 어묵과 인스턴트 죽 종류와 삶은 계란과 슬러쉬 기계와 핫바, 어묵국과 만두 등이 든 보온 유리 박스들이 놓여 있는 진열대 앞을 기웃거리자 부엌에서 한 여자가 나왔다.
아주 검은 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인데 몸집이 크고 얼굴이 발그레하고 콧등에 땀이 맺혀 있었다. 부엌 안엔 나이든 여인네가 솥에서 국수를 건져내고 있었다. 우체국장이 커피 두잔을 부탁하자 그녀는 말없이 커피 머신에서 뽑아 주었다. 눈동자도 크고 입매도 고왔다. 서른 두 살이나 세 살 쯤 돼보이는 여자인데, 이전에 언젠가는 아주 예뻤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풀어오른 붉은 피부에 온통 파묻힌 꼴이었다. 옷차림도 흐릿한 분홍색 셔츠에 물이 빠진 검은 빛 몽당 치마를 입고 앞이 막힌 플라스틱 슬리퍼를 끌고 있었다. 반지 하나 끼워지지 않은 손은 물에 불어서 두툼하고 컸다. 테이블에 커피를 놓고 등나무 아래에 앉자 남자는 담배를 피웠다.
―이름이 있겠지요.
남자는 연기를 내뿜으며 문득 물었다. 나는 약간 아연해져서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남자는 역시 눈을 몇번 깜박거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도 이름이 있어요. 알고 싶지 않습니까?
남자가 양철 테이블 위에 담배를 비벼 끄며 다시 물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죽을 때까지 모르는 남자의 이름 따윈 알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잔디 위에 드문드문 심어진 장미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왜 나는 이렇게도 거만하고 쌀쌀한 태도를 취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미소 지으며 내 이름은 이미흔이에요. 당신은 누구죠?라고 하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도 권태로운데, 노래를 지운 빈 테이프를 하루종일 듣는 것 같은 시골의 생활. 절대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없는,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버린듯한 완료형의 나날 속에서. 더구나 누군가와 야외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얼마 만인지…. 그는 다시 시작하자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몇 살이에요? 열두 살? 스물 두 살? 서른 살? 마흔 살? 이름은 뭐예요? 오이풀? 질갱이? 개여뀌? 개망초? 쥐오줌풀? 달개비? 쇠비름?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서른 세 살. 이름은 미흔이에요.
<글: 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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