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대체로 순진한 풋나기 변호사. 거대조직의 음모에 맞서 싸우면서 죄없는 희생양을 목숨걸고 보호한다. 이상주의자인 젊은 주인공이 사건을 파헤쳐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하지만 어딘지 비현실적인 영웅의 냄새가 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각색, 연출을 맡은 ‘레인메이커’는 그리샴 원작 영화가운데 가장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영화로 꼽을 만하다.
변변한 치료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백혈병 환자를 위해 거대 보험회사와 싸우는 신출내기 변호사 루디(맷 데이먼 분). 천신만고 끝에 신승(辛勝)을 거두지만 그가 얻는 것은 승리자의 영웅적인 길 대신 ‘어느 누구도 완전히 이길 수 없는 게임’인 현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요즘 영화들의 단순명쾌한 영웅담과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장중한 고전의 느낌을 주는 이 영화가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생략과 절제의 리듬을 따르는 코폴라의 카메라는 루디가 ‘매맞는 아내’ 켈리(클레어 데인즈 분)의 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하는, 가장 극적인 장면에서조차 결코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샛별’ 맷 데이먼은 성실하지만 어리숙하고, 현실에 발을 깊게 디딜수록 법률적 정의에 깊은 회의를 품게 되는 변호사 루디 역에 딱 들어맞는다. 우리 식으로 치자면 사무장 격인 데니 드 비토를 비롯해 존 보이트, 미키 루크 등 빛나는 조연들의 연기는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데 큰 몫을 했다. 29일 개봉.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