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함정호/辯協 타율규제 시대역행 아닌가?

  • 입력 1998년 8월 27일 19시 22분


민 관 합동의 규제개혁위원회가 1백18개 사업자단체에 대해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동안 일부 사업자단체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오히려 구성원들의 경쟁력을 훼손하고 그 부담이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어왔던 터라 규제개혁위원회의 이러한 조치는 일단 적절한 일로 보인다. 구조조정의 시대적 요청에서 사업자단체라 하여 예외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제개혁위원회의 개혁안이 사업자단체의 다양한 성격을 충분히 감안하여 신중하게 결정된 것인지에 관하여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업자나 사업자단체도 그 직역의 성격에 따라, 특히 공공성의 측면에서 편차가 아주 크고 그에 따라 접근방식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를 대표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무엇보다 대한변협의 변호사징계권을 다시 정부로 이관키로 했다는데 대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변호사가 비록 공직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고도의 전문성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직무 성격상 지도적인 공인으로 인식되어 왔고 대한변협도 대표적인 공익단체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 마당에 그 많은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의 하나로만 분류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최근 법조비리가 불거져나오고 변호사나 법조계 전반이 불신 받고 있음은 사실이다.

대한변협의 징계권 행사가 미흡하다며 변협의 자정의지에 회의적인 일부 견해가 있음도 솔직히 인정한다.

이에 대해 충심으로 송구한 마음이 앞선다.그리고 총체적 부패구조 속에서 변호사계만 홀로 투명할 수 없었다거나 자기정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변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먼저 대한변협이 더욱 공공성을 강화하도록 격려하고 고무하는 노력에 앞서 극히 일부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하여 그 순기능까지 부인해버리겠다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지난 권위주의시대에 암울한 인권상황에 맞서 선배 동료 변호사들이 대한변협을 중심으로 뭉쳐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 왔음은 특별히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탈권위주의 시대를 맞아 대한변협이 보다 보편적인 지평에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보장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개방화시대의 국제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경쟁력있는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있다는사실도이기회에상기시키고 싶다.

문제가 되고 있는 변호사징계권은 93년 이전에는 법무부가 행사했다.

이에 대해 변협이 끈질기게 징계권 이관을 요구해온 결과 정부에서도더 이상의 후견적 통제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하고 93년 변호사법개정으로 징계권을 변협으로 이관함으로써 변호사단체는 비로소 자율권을 확보했다.

이는 단지 어느 단체가 자율권을 가지게 됐다는 의미 이상의 의의를 가진다.

정부기능을 가능한 한 민간부문으로 이양한다는 것은 정부의 규제를 축소하고 민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대, 민주주의를 성숙시킨다는 시대정신과 합치하며 진보의 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험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연평균 4건에도 못 미치던 징계건수가 변협이관 이후 10건 이상으로 증가했다. 제명 변호사도 법무부가 징계권을 가진 47년 동안 13명에 불과했으나 변협이 징계권을 가진 이후 5년이 지나지 않은 올초에 이미 5명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제와서 더욱이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 정부집중에서 민간분산으로, 권위주의에서 참여민주주의로 나아가겠다는 것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서 변호사징계권을 다시 정부가 환수하겠다는 근본취지가 과연 무엇인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규제개혁위원회가 규제를 풀기 위해 다시 규제를 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면 변호사징계권 정부이관 시도는 타율에서 자율로 나아가는 시대지향이나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가고자 하는 국정방향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혹시 거기에는 다른 뜻이라도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는 사실을 특별히 덧붙이고 싶다.

함정호<대한변호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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