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한줌을 얻기 위해 지긋지긋한 몸부림을 해야 하는, 거리의 악취가 스크린에 배어나오는 듯한 가난.
카메라는 순진하면서도 악동기 가득한 소년의 눈을 통해 가난과 폭력 알코올 더러움 비겁함 섹스 무질서 범죄 등 어른들의 무질서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같은 어두움이 영화의 줄기는 아니다.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소년과 소녀의 말로 표현되지 않는, 황순원의 ‘소나기’와 비슷한 향취를 맡을 수 있는 우정어린 사랑.
이 영화엔 특히 한국전쟁 전후 우리의 성장소설을 떠올리게하는 친숙한 영상이 가득하다.
학교 화장실에 이스트를 집어넣어 분뇨가 거리에 넘치게 하고 기차 선로를 바꾸는 등 악의는 없지만 도발적인 방법으로 어른들의 부당한 질서에 도전하는 소년의 장난, 자신은 몸을 팔아 생계를 꾸리지만 아들이 거리에서 차(茶)를 팔아 번 돈을 훔친 것이라 오해해 찢어지는 심정으로 마구 때리는 어머니….
감독 비탈리 카네프스키는 모스크바영화학교 졸업을 앞두고 강간죄로 8년간 투옥되는 등 긴 우회 항로를 거친 뒤 53세에 이 영화로 데뷔한 늦깎이.
깔끔한 플롯의 중편소설을 읽고 난 듯 애절한 뒷맛을 남기는 이 작품으로 90년 칸영화제에서 최우수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열세살짜리 주인공 파벨 나자로프는 영화 속에서와 비슷한 ‘거리의 소년’이었다.
원제는 ‘멈춰, 죽어, 부활할 거야’란 뜻의 ‘Freeze, Die, Come to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