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미룰 수 없다④]혼탁선거

  • 입력 1998년 8월 30일 20시 11분


여야는 지난 4월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통합선거법)을 개정했다. ‘돈선거’는 가능한 막고 ‘입선거’는 최대한 허용한 것이 새 선거법의 특징 중 하나였다.

그러나 새 선거법에 따라 치러진 ‘6·4’지방선거와 ‘7·21’재 보궐선거에서 혼탁선거양상이 수그러들었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았다.

이른바 ‘3대 선거악’ 중 금품살포는 다소 줄었지만 흑색선전과 인신공격, 지역감정 조장 발언은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렸다. 공공연한 돈살포가 어려워지면서 ‘입’에 의해 선거판 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한 것.

지방선거 당시 국민회의 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후보부인의 사생활과 관련,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비방을 담은 문건이 살포된 게 흑색선전의 대표적인 예.

선관위 단속에 걸린 비방 흑색선전 사례에는 ‘전처와 이혼하면서 폭력을 행사한 전과자’ ‘첩이 둘이나 되는 호색한’ 등 추하고 터무니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의원은 대통령을 겨냥한 ‘공업용 미싱’발언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또 한나라당 안상영(安相英)부산시장후보는 상대후보가 축재의혹을 유포하며 ‘제2의 대도 조세형’이라고 비방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공공연한 지역감정 조장도 선거판을 ‘진흙탕’으로 만들었다.

‘4·2’재 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이기택(李基澤)고문은 “올해 실업자가 2백만명이 되면 이 중 1백만명은 부산시민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권정달(權正達)의원도 “경상도출신의 우리 아들 딸들이 공직에서 밀려나 하나둘씩 보따리를 싸들고 고향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같은 ‘입’에 의한 혼탁선거는 선관위 단속실적에서도 잘 나타난다.

95년 ‘6·27’지방선거 때 비방 흑색선전 단속건수는 51건에 불과했지만 올 ‘6·4’지방선거에서는 무려 1백94건에 달했다.

상대방에 대한 고소 고발이 유난히 많았던 것도 최근 선거의 새로운 양상이었다.

‘6·4’지방선거 당시 피고발자에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서리 조세형(趙世衡)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 박태준(朴泰俊)자민련총재 조순(趙淳)한나라당총재 등 여야 수뇌부가 모두 망라된 것이 이를 짐작케 한다.

반면 금품살포나 향응제공 선심관광 등과 같은 후진국형 ‘매표(買票)행위’가 상당히 준 점은 평가할 만했다.

95년 ‘6·27’지방선거 때는 이런 사례가 3백36건이나 적발됐으나 ‘6·4’지방선거에서는 2백25건만 적발됐다.

그렇다고 ‘매표시비’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7·21’재 보선에 출마한 자민련 김동주(金東周)후보가 2개 동에서만 4억5천만원을 뿌렸다는 주장이 제기돼 아직 시비거리로 남아 있다.

‘4·2’재 보선 막판 A당은 경북 문경―예천과 의성지구당에 1억원씩의 ‘돈가방’을 전달했다는 강한 의혹을 샀으나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B당 사무총장의 측근은 “최근 선거에서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무차별적 금품살포가 없었을 뿐 중앙당에서 조직가동비로 예전과 비슷한 수준의 ‘돈가방’을 내려보냈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 김호열(金弧烈)정당국장은 “현행법에 비방 흑색선전에 대한 제재규정이 있으나 그 한계가 모호해 실제 처벌되는 경우가 별로 없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분명히 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문철 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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