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M&A 규모가 1조6천억달러에 달해 전문가들은 사상최대라고 흥분한 바 있지만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1조2천억달러에 이르러 지난해 기록을 쉽게 깰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올해를 ‘The Year Of The Deal’로 규정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올해 상반기중 1만여건에 이르는 기업 M&A 중의 백미(白眉)는 역시 5월에 발표된 독일다임러벤츠사와 미국 크라이슬러사의 3백90억달러 규모의 합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기업의 지명도나 규모, 유럽과 미국의 강자들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의 부가 마치 블랙홀처럼 미국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기업이 미국 굴지의 기업을 인수합병한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비주력사업 정리 박차▼
그러나 다임러 벤츠를 비롯한 유럽 기업들이 90년대 초반부터 기울여온 구조조정의 노력을 보면 이와 같은 미국기업의 인수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90년대초반까지만 해도 다임러사는 유럽의 여타 기업처럼 시너지효과의 창출이라는 모토하에 전기 의약 기술 기계 마케팅 에너지 항공 등 주력업종 외의 분야에 많은 투자를 감행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업종다각화 전략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95년에는 한해 적자가 무려 50억달러에 달하면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러자 95년에 취임한 슈룀프회장은 자동차산업에만 주력할 것임을 선언하고 전기분야의 AEG사는 지멘스사에 매각하고 항공분야의 포커사 등 각종 비주력사업을 과감히 매각하는 단호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35개 사업은 23개로 축소되고 7만5천여명의 종업원이 그룹을 떠나야 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고통의 2년이 흐른 97년 다임러 벤츠사는 연간 28억달러의 흑자기업으로 전환했고 올해 세계적인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강자로 발돋움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럽 최대의 전기 전자그룹인 지멘스사도 한 분야에서 세계 3위 이내에 들지 않으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전제 하에 90년대 초반부터 사업성이 뒤떨어지는 부문은 과감히 정리하여 현재는 자본수익률 10%를 자랑하고 있다.
세계 굴지의 화학그룹인 획스트사도 94년부터 ‘Transition 94’라는 구조조정 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해 주력분야를 의약품 농화학 및 생화학분야로 선정하고 96년에만 1만4천명을 해고하는 등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97년 흑자규모가 93년에 비해 2.5배로 늘어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나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는 지금 미증유의 구조조정의 와중에 휩싸여 있다.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M&A 붐도 이러한 구조조정의 단면이다. 구조조정은 경제주체들이 과거와 다른 질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단일 또는 유사 업종간의 결합을 통해 덩치를 키운다는 것이다.
특히 흑자기업이 적자기업을 인수하는 종전의 패턴에서 벗어나 강력한 라이벌끼리의 통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세계시장에서의 지배적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美상대할 경쟁력 갖춰▼
이러한 구조조정은 무엇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뒷받침되어야 성공이 가능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유럽의 대기업은 물론이고 현재 유럽의 4대 신흥 호랑이로 꼽히고 있는 핀란드 네덜란드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도 경직된 노동시장의 개선을 통해 오늘과 같은 활기찬 경제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으로 평가된다.
80년대에 일찍 어려움을 겪었던 미국에 비하면 유럽기업은 미국보다 5년 이상 늦게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그러나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가혹한 자기혁신을 통해 미국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로 발돋움했다.
유럽기업의 구조조정과 자기혁신을 통한 경쟁력 확립은 오늘 우리가 고통을 분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미래를 향한 생존에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김은상<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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