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차웅/훼손당한 男根石

  • 입력 1998년 9월 1일 19시 10분


우리 조상들은 다산(多産)과 풍요를 빌고 악귀를 쫓기 위해 남근석(男根石)을 세웠다. 요즘도 시골에 가면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남근석을 흔히 볼 수 있다. 우연히 남자 성기와 닮은 바위를 옮겨다 놓은 경우도 있지만 정성스레 돌을 쪼아 만들어 세운 것도 있다. 어느 쪽이든 대개 남근석은 당당하고 힘찬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뛰어난 리얼리티와 단순하고 힘찬 형태감은 현대조각품을 연상케도 한다.

▼마을의 남녀노소가 마을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남근석을 매일 보며 태연히 지나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그뿐인가. 아이가 없는 여자는 이 남근석을 어루만지며 아이를 달라고 치성을 드렸다. 대보름날 같은 특정한 날에는 온 동네사람들이 남근석 앞에 모여 제(祭)를 올리며 풍년을 기원했다. 우리 민족의 개방된 성의식과 성신앙을 엿볼 수 있는 풍속이다.

▼천연기념물인 강원 평창군 백룡동굴 안에 있던 ‘남근석을 닮은 종유석(鍾乳石)’이 훼손됐다는 소식이다. 당시 평창경찰서장 일행이 이 동굴에서 문제의 종유석을 잘라내 반출했다가 말썽이 나자 45일만에 도로 갖다 놓았다는 것이다. 경찰서장 일행 중에 아이가 없는 사람이 그런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문제는 한번 훼손된 종유석은 되살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석회석 등의 광물질이 방울져 떨어지면서 생겨나는 동굴침전물로는 동굴천장에서 자라는 종유석과 동굴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석순(石筍)이 있다. 종유석은 보통 50㎝ 정도 자라난다. 공기흐름이 없는 곳에서는 그 이상도 자란다. 이번에 훼손된 종유석은 길이가 40㎝로 수억년된 것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욕심이 오랜 세월을 거쳐 자연이 빚은 예술품을 영원히 잘라낸 것이다.

〈김차웅 논설위원〉cha4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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