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상호/경찰의 「위험한 총질」

  • 입력 1998년 9월 1일 19시 10분


“경찰이 잘했어요. 그런 범죄자는 총을 쏴서라도 잡는 것이 당연해요.” “요즘같이 험악한 세상에 실탄을 쏴서라도 범인을 잡는 것이 경찰의 할 일 아니겠어요.”“그런 사람은 좀 다쳐도 싸요.”

‘한결같이’ 경찰관을 옹호하는 의견이었다. 발포 당시 현장에서 불과 5∼6m 떨어진 버스정류장에 있던 수십명의 시민과 학생의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없다.

31일 오전 경찰이 서울 자양2동 주택가 한복판에서 10여발의 실탄을 쏴 10대 강도를 검거한 데 대한 시민의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경찰의 해명보다 ‘한 술’더뜨는 반응이 나왔다. ‘과잉대응’이라고 분개하는 시민이 있을 것이라는 예단은 영 빗나가버렸다.

영국에서 70년대 중반 한 경찰관이 시민들이 운집한 거리에서 총을 쏴 범인을 검거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경찰관은 포상대신 중징계를 받아야 했다. 시민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로에서 실탄을 발사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범인을 놓칠망정 ‘시민안전’을 뒷전에 두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는 논리다.

물론 우리의 치안 현실이 영국과 같을 수는 없다. 나날이 흉포해지는 강력범죄의 현장에서 경찰력은 밀리고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탈옥범 신창원을 잇따라 놓쳐 여론의 따가운 질책이 경찰의 ‘과잉대응’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에 나와 있는 기본대로 경찰력은 범죄행위에 ‘비례’해서 행사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른바 경찰비례의 원칙이 그것이다. 그리고 지나친 강력대응은 범죄의 흉포화를 부추길 뿐이라는 이론도 감안해야 한다. 여론이 범죄를 미워 한다고 해서 경찰력 행사가 마냥 거칠어지면 그것도 위험한 일이다.

윤상호<사회부>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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