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은 최근 급박하게 진행중인 정치권 사정(司正)에 ‘야당흔들기’의 의도는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진위야 어떻든 한나라당이 면모를 일신하고 새 출발을 하는 날 이회창(李會昌)신임총재의 최측근인 서상목(徐相穆)의원을 출국금지시킨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등 여권은 “수사와 정치는 별개”라고 반박하지만 국정운영을 책임진 입장에서 좀더 거시적인 안목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총재가 2일 서의원을 당정책위의장에 전격임명한 것은 치졸한 대응이 아닌가 싶다.
한나라당은 “적임자를 임명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검찰의 정치인 사정을 ‘야당탄압’으로 규정한 이총재로서는 강도높은 반격이 필요했을 법하다. 하지만 검찰이 소환대상으로 지목한 인사를 주요당직에 임명한 것은 ‘할테면 해보라’거나 ‘웃기지 말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 스스로 정치를 희화화(戱화化)한 셈이다. 특히 ‘새 정치’를 명분으로 차기대권을 노리고 있고 일정부분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이총재로서는 이런 대응이 목표달성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를 일이다.
더욱이 서의원이 연루된 사건은 철저한 사실규명이 이뤄져야 할 중대사안이다. 집권을 위해 국민의 세금을 볼모로 ‘검은돈’을 뒷거래했다는 수사결과가 사실이라면 이총재와 한나라당은 ‘석고대죄(席藁待罪)’해도 모자랄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든 여야 모두 의혹의 진상을 밝히는 데 먼저 협조해야 한다. 정치공방은 그 다음에 벌여도 늦지 않다.
최영묵 <정치부>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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