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비리에는 특권 없다

  • 입력 1998년 9월 3일 18시 28분


정치권에 사정(司正)회오리가 불어닥쳤다. 여당 부총재와 구 여당 소속의 전직 입법부 수뇌급 인사를 포함한 여러 정치인들이 줄줄이 구속 또는 소환되고 있다. 수사결과를 지켜보아야겠지만 비리혐의도 가지가지다. 정치권이 이렇게까지 넓고 깊게 썩었다는 것이 놀랍고 착잡하다. 사태가 여기에 이른 이상 정치권 사정은 더욱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부패한 정치인을 도려내고 정치를 개혁하는 일은 이제 머뭇거릴 수 없다.

말할 것도 없이 정치인 사정은 여야와 지위에 관계없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적 고려나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 점에 대해 오해나 시비가 생긴다면 사정도 개혁도 성공하기 어렵다. 현직 여당 부총재와 전직 입법부 수뇌급이 수사대상에 오른 것을 보면 이번 사정은 일단 외관상 성역없이 진행되는 것으로 비친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형평성 논란이 계속 일고 있다.

검찰과 여권은 형평성 시비가 없도록 특별히 유념해야 한다. 검찰은 여당 부총재 구속을 ‘구색 맞추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 여권인사들의 다른 비리도 철저히 밝혀내기 바란다. 아울러 여권은 사정에 참견하는 듯한 언동을 자제해야 옳다. 특히 범법혐의를 받고 있는 야당의원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국민회의 간부는 “조건 없이 입당하겠다는데 어떻게 막느냐”고 말하지만 그렇게 이완된 태도로 뭘 하겠다는 것인가. 그것은 사정의 정치적 순수성을 훼손하고 개혁의 추진력을 떨어뜨릴 뿐이다.

한나라당이 정치투쟁과 민생현안처리를 분리해 대응하는 것은 비교적 성숙한 자세다. 그러나 소속의원의 구속을 막기 위해 임시국회를 또 소집하고 일부 의원의 소환불응을 당론으로까지 정하는 것은 의원특권의 악용이다. 회기중에는 국회동의 없이 의원을 체포할 수 없다는 ‘불체포 특권’은 정당한 원내활동을 보장하려는 것이지 비리를 감싸기 위한 장치는 아니다.

국회가 부패의원의 피난처가 될 수도 없다. 한나라당이 대선자금의 일방적 수사 가능성에 반발할 수는 있겠지만, 국세청의 대선자금 불법모금과 의원의 현저한 개인비리까지 덮으려 해서는 안된다. 바로 그런 혐의로 소환대상에 오른 의원을 중요 당직에 임명한 것은 법에 도전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쉽다.

여야 모두 검찰수사에 당당히 협조해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응분의 처벌을 받고 잘못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순리다. 검찰이 정치권에 대해 ‘상시(常時)감시체제’를 구축하려 할 만큼 정치판은 혼탁하다. 그것을 가려내겠다는데 정치인들이 불응 또는 방해하는 것은 비뚤어진 특권의식이다. 비리척결에는 특권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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