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미룰 수 없다⑨]발묶인 「국회 감시」

  • 입력 1998년 9월 7일 19시 33분


96년 가을 정기국회를 앞두고 발족했던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

(경실련)산하 의정감시단은 탄생 1년도 안된 지난해 4월 해체되고 말았다. 정치권 입법활동에 대한 상시적 감시와 견제를 모토로 발족했던 의정감시단의 도중하차는 시민운동단체의 정치권 감시활동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의정감시단은 각대학 법학교수 변호사 대학원생 회사원 주부 50여명으로 모니터팀을 구성해 의원들의 입법활동에 대한 ‘밀착감시’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처음부터 벽에 부닥쳤다. 의원들의 상임위 및 소위활동에 대한 접근권이 원천 봉쇄돼있었기 때문이다. 현행 국회법에는 상임위 방청은 위원장의 재량에 따라 허가여부를 결정토록 돼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상임위원장들은 의정감시단의 방청권 요구에 대해 “여야 간사들과 협의해야 한다”거나 “과거 그런 전례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당시 의정감시단에 참여했던 경실련의 고계현(高桂鉉)국장은 “소위에서의 발언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여야의원들을 만나면 상대당에 잘못을 떠넘기기 급급했고, 공무원들은 ‘입장이 난처하다’며 아예 입을 다물었다”고 회고했다. 정치권이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된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사회엔 정치권의 잘못을 비판하고 감시의 눈을 번득일 ‘견제세력’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비판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이슈가 터졌을 때만 소나기성으로 훑고 지나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시적 감시활동을 모색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경우는 제도적 규제와 정치권의 ‘역견제’에 막혀 속속 벽에 부닥치고 있다. 현재 참여연대, YMCA,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등에서 의정감시단을 가동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결실을 얻지 못했다.

시민운동 단체의 활동을 제약하는 독소들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의원들의 입법활동에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음으로써 감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최소한 의원 개인의 투표결과를 남기는 기록투표제와 소위의 속기록 작성 의무화 만이라도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시민단체들은 90년대 초부터 선거법 87조의 개정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미동도 않고 있다.

이같은 한계에 부닥친 시민단체들은 최근 정치권에 대한 유일한 견제수단은 임기도중이라도 문제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도입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대적인 캠페인에 착수했다. 시민단체들은 국민소환제 도입 및 선거법개정을 위한 시민연대회를 구성키로 하고 각 단체별로 서명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국민소환제를 위협적 제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치권의 반응은 냉담하다.

YMCA 시민사회개발부 이윤희(李允熙)간사는 “지금의 여건하에서는 국민소환제 도입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모든 시민단체들이 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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