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日경제개혁 실패의 교훈

  • 입력 1998년 9월 17일 19시 14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총리는 7월30일 취임 직전 미국 뉴욕타임스로부터 “식은 피자가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모욕스러운 핀잔을 들었다.

그는 “식은 피자도 데우면 맛이 괜찮다”고 응수한 뒤 총리에 취임했다. 얼마나 절치부심(切齒腐心)했을까. 따라서 그가 개혁에 꽤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총리취임 50일을 맞으면서 그같은 기대는 무너지고 있다. “경제정책을 볼 때 역시 식은 피자에 개혁을 주문하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1년여 전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단어는 ‘개혁’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딴판이다.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는 입만 열면 금융 재정 등 경제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제 오부치총리뿐만 아니라 경제개혁이라는 말을 꺼내는 사람은 드물다.

경제개혁이 이처럼 의붓자식 취급을 받게 된 것은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 때문이다. 재정개혁을 위해 추진된 소비세율 인상과 감세(減稅)축소 등이 소비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는 분석은 정설이 됐다. 급격한 소비위축은 결국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준비성이 철저한 일본인답게 10명 중 9명은 “장래가 불안하니 정부가 감세를 하더라도 은행에 돈을 집어넣겠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거듭 내놓아봐야 통할 리 없다.

이러고 보면 일본정부는 개혁이라는 명분을 좇느라 실물경제 흐름을 놓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막는 상황’을 만든 셈이다. 외과수술이 환자를 죽인 셈이다.

일본의 실패에서 한국이 뭔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권순활<도쿄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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