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우울한 延高祭

  • 입력 1998년 9월 18일 19시 28분


매년 가을에 열리는 연세대와 고려대의 연고제(延高祭)는 재학생은 물론 동문들의 마음까지 설레게 하는 축제다. 양교 학생들은 다양한 학술 문화행사에 참여해 지성과 야성을 구가하며 젊은이의 특권을 마음껏 누린다. 마지막 행사인 연고전(延高戰)은 운동경기와 조직적 응원을 통해 애교심을 발휘하는 양교만의 자랑이다. 각종 고시나 취직시험 공부로 빈자리가 없는 도서관도 이날만은 개점휴업이다.

▼그러나 다음주 열리는 올해 연고제는 딴판이 될 전망이다. 실업제(失業祭)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우울한 행사 일색이다. ‘한국의 백수들이여 단결하라’ ‘실업과 인권을 말한다’ ‘3천원짜리의 하루’ ‘예비실업자 위자료청구소송’ ‘청년실업대책수립 촉구를 위한 거리행진’ 등 이름부터 취업문제가 주요 이슈임을 드러낸다. 양교생들은 ‘I Want Job(나는 일하고 싶다)’이라고 쓴 배지도 단다고 한다.

▼취업문제는 비단 양교만의 고민이 아니다. 요즘 대학가에서 4학년은 ‘저주받은 학번’, ‘사(死)학년’으로 불린다. 참담한 자기비하에 부모들과 기성세대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다. 어느 TV에 방영된 한 기업의 인턴사원 원서접수창구는 비통하기까지 했다. 6개월짜리 월 50만원 보수에 응시자가 구름같이 몰렸다. “이런 기회나마 마련해준 기업측이 고맙기만 하다”는 한 여학생의 말이 서글프다.

▼내년 2월 졸업생의 경우 10명 중 1명꼴만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기존 직장에서 쫓겨난 실직자문제도 심각하지만 청운의 꿈을 키워온 대학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게 비극이다. 오는 26일 연고전이 끝난 뒤의 거리행진을 시작으로 대졸생 취업문제가 큰 시국문제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육정수<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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