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에 대한 외국인의 매수가 처음 허용된 것은 92년 11월. 이를 미리 안 국내 투자자들이 한전주식을 미리 매집하면서 한전주가는 8월 9천원대에서 11월 2만5천원대로 1.8배 올랐다. 문제는 매매가 허용된 11월24일 오전에 생겼다. 외국인들은 개장초에 3백만주를 상한가로 사자 주문을 냈으나 국내 기관의 압도적 팔자 매물에 밀려 하한가로 떨어졌다. 외국인들은 이날 큰 손해를 보았고 매매를 중계했던 국내 브로커들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지금 생각하면 며칠만 늦게 샀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지만 외국인들은 당시 한전 주식에 붙을 프리미엄에 현혹됐던 것 같다.
올 러시아 사태때도 외국인들은 판단미스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러시아가 8월18일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하자 증권관계자들은 세계 주가의 폭락을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 18일 약세를 보였던 주가는 19일 유럽을 필두로 상승세로 반전했다. 모라토리엄 선언이 러시아 사태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외국인의 생각이 상승의 요인이었다. 그러나 주가는 다시 하락했고 잘못된 전망으로 큰 투자손실을 입었다.
외국인도 사람이다 보니 주식 운용에서 판단착오를 할 수 있다. 오죽 했으면 투자의 귀재인 소로스마저 러시아에서 20억달러의 손해를 보았겠는가. 그럼에도 이들이 세계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수익과 함께 위험관리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펀드들은 투자부적격 국가에서부터 개별종목의 매매회전율에 이르기까지 많은 제한을 두고 있다. 투자에서 항상 승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나쁠 때를 대비하는 자세일 것이다. 주가가 예측한대로 잘 맞지 않으면 수익보다 손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자세가 소리없는 전쟁에서 영원한 승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이정우(대우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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