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농어촌 구조개선기금 도둑질

  • 입력 1998년 9월 25일 19시 21분


농어촌구조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원된 농어촌구조개선기금이 적당히 농간을 부리면 아무나 떼어먹을 수 있는 ‘눈먼 돈’이었음이 드러났다. 비리 수법과 유형도 다양하거니와 금액 또한 건당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른다. 그것도 기금 집행과 사용을 심사 관리해야 할 현지 공무원들의 묵인 또는 결탁 아래 이루어졌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더욱 충격인 것은 지금까지 검찰수사로 밝혀진 유용금액 3백38억원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갖가지 형태로 유용된 기금은 전체 보조금의 30% 수준에 이르리라는 것이 검찰 추산이다.

작년말 현재 농어촌에 지원된 농어촌구조개선기금은 무려 31조7천억원에 이른다. 앞으로 2004년까지 농림투융자사업이 계속되면서 총57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같은 막대한 자금이 경지정리 농촌기계화 축산업구조개선 등 12개 분야에 걸쳐 보조금이나 융자금 형태로 지원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농민에게 직접 지원되는 보조금이다. 그 금액만도 2조5천억원이다. 그중 30%가 유용됐다면 7천5백억원의 국민세금이 낭비됐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농촌 사회간접자본(SOC)투자와 유통 가공사업에 지원된 28조5천억원의 자금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집행됐는지 의문이다.

농어촌기금과 관련된 비리를 적당한 선에서 얼버무려서는 안된다. 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농림투융자사업 전반에 대한 철저한 감사가 뒤따라야 한다. 불법유용자금에 대한 구상권 행사는 물론 관리 감독책임도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 농어촌기금의 유용과 관련,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며 그 다음 피해자는 정작 영농자금을 필요로 하는 농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리의 재발을 막고 농림투융자사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대책 마련을 미룰 수 없다. 우선 농림투융자사업의 집행관리체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 지원대상 선정과정에서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물론 자금집행의 확인 검정 정산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또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농업경영종합자금제, 농업경영진단 및 컨설팅제의 도입과 보조사업의 감축 및 융자전환, 우선순위의 재조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사업계획 수립과 집행과정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책실명제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대책들은 농림투융자사업의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지난 96년 이후 줄곧 검토되어 왔으나 여전히 정책과제로만 남아 있다. 그것은 오로지 공무원의 책임의식 결여와 무사안일 탓이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는 앞으로 투입될 26조원의 기금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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