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고 난 후에는 오랫동안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세요? 어디에 있나요? 점심을 먹을 시간이네요…. 내 생각은 하지 않나요? 보고 싶어요, 지금. 이 순간에 전화가 울려주길 숨이 막히도록 기다리고 있답니다. 당신이 전화해 주지 않고서는 이 순간을 넘길 수가 없어요. 이대로 꼼짝도 할 수가 없어요.
나는 4시간 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는 집에 왔다가 간 날 이후로 전화를 하지 않았다. 일주일째였다. 그런데도 내가 전화를 걸 수는 없었다. 전화를 받고 싶은 마음의 간곡함 만큼 전화를 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궁리 끝에 공과금 청구서를 들고 집에서 나왔다.
수를 학교에서 데려다 휴게소에서 놀게 하고 우체국에 들렀다. 그는 우체국장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일을 끝내고 나와서 문앞에서 기다리는데도 그는 따라나오지 않았다. 나는 우체국 정원의 나리꽃 꽃잎을 뜯으며 마당을 서성이다가 그냥 돌아와야 했다.
일주일이 넘도록 그는 전화하지 않았다. 집에도 들어오는 것 같지 않았고 우체국으로 전화를 걸면 여직원이 전화를 받아 자리에 없다고 말했다.
나는 한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휴게소에서나 집안에서나 숲길에서나 낚시를 했던 바닷가에서나, 우리가 처음 만났던 부희의 집 앞에서…. 어느 날은 꼬박 여섯 시간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방안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잠든 한밤중에 거실에 나가 그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편지들은 띄우지 않았다. 그것은 내 가방의 안쪽 지퍼로 닫는 작은 공간에 넣어두었다.
그날은 학교에 너무 일찍 도착한 날이었다. 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학교 앞의 농협 창고 앞마당에 차를 세우고 서성대다가 아이들이 과자를 사는 구멍가게가 있고, 보건 분소와 면사무소 출장소와 빈 관공서 건물과 빈집들과 작은 선술집이 있는 퇴락한 시골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가을 햇볕이 눈부시게 환하고 따갑지만 바람은 이미 차가웠다.
농가들이 늘어서 있는 텅 빈 거리의 끝까지 갔다가 가게 앞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아 들고 돌아오는데 면사무소 출장소 앞에 규의 차가 멈추어 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그가 훌쩍 뛰어 내렸다. 그와 함께 곁의 차문이 열리고 짧은 스커트를 입은 허벅지가 커다란 시골 아가씨가 몸을 약간 틀며 내렸다. 전입 신고를 하러 들렀을 때 보았던 출장소의 아가씨였다. 규는 그대로 서 있고 아가씨는 손을 살짝 들었다가 내리고 곧바로 출장소의 마당으로 들어갔다. 규는 차에 올라 문을 탕 닫았다. 나는 달려가지 못하고 멍청하게도 길 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규의 차는 떠나고 나는 팔을 길게 늘어뜨리고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종이컵에서 커피가 출렁출렁 흔들리며 흘러내렸다. 나의 꽃무늬 코트에도 뜨거운 커피 얼룩이 스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체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규는 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고 여직원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규는 나를 피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감정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 채 여전히 그가 나를 부르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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