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병기/무연고墓와 火葬사이

  • 입력 1998년 9월 27일 19시 58분


산 자들의 주택난 못지않게 사자(死者)의 유택(幽宅)난 또한 심각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전국 2천만기의 묘지 중 가족이나 후손의 발걸음이 끊긴 ‘무연고’ 묘가 40%(8백만기)나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5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서울시립 벽제동묘지. 추석을 앞두고 벌초가 끝나 가지런한 분묘들 사이로 온갖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이 위를 덮고 있는 분묘가 더러 눈에 띈다.

벽제동 장묘사업소 이문희(李汶熙)소장은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 겉으로 보기에 조그만 언덕은 모두 무연고 묘”라고 말했다. 벽제동묘지 2만7천여기의 분묘 중 1천5백여기가 무연고.

시립묘지는 사정이 나은 편. 현재 전국의 야산에는 약 8백만개의 무연고 묘가 있는 것으로 당국 집계에 나와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야산이 개발돼 개발업자가 무연고 묘를 개장(開葬)해 납골당에 옮기기 전까지는 손을 쓰지 않고 있다. 혹시 후손이 나타나서 문제를 삼을까 두려워해서다.

집안마다 다를 수 있지만 보통 후손들은 5대조 묘까지 기억하고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먹고 살기’ 고달픈 요즘 세상에서는 그나마 쉬운 일이 아니다. ‘21세기 후손’의 삶은 더 가파르고 바쁠 것이다. 그래서 무덤들은 비바람에 노출되어 세월과 함께 산천으로 변해가기를 기다려야만 할 것인가.

무연고 묘 문제는 우리의 장묘문화와 의식을 바꾸어야 해결이 가능하다. 화장(火葬)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면 프랑스식 가족묘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가족묘를 건물로 만들어놓으면 후손이 한 명만 있어도 무연고 묘로 방치되는 일이 없고 국토 잠식도 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병기<사회부>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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