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름모자 벗기 게임(64)

  • 입력 1998년 9월 30일 18시 36분


제3장 나에게 생긴일 ⑦

―네가 거짓말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네가 거짓말하면 나도 민망해지거든. 나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일찍 들어왔어. 들어가는 거 알리려고 전화를 했는데, 전화가 안되더라. 들어오다가 뜨거운 사우나를 하려고 여길 들렀지. 네 차가 있더군.

그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빨리 목욕을 하고 너를 만나 함께 집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씻었지. 목욕하고 나오니까, 아직 네 차가 있었어. 같이 가려고 좀 기다렸지. 30분이 지나도 안 나오기에 목욕탕 아주머니께 너를 좀 불러달라고 부탁했어. 목욕탕 아주머니가 조금 있다가 나오더니 일곱 살 난 남자애도 없고 젊은 여자 손님도 없다고 하더군.

그의 눈 밑이 보라빛으로 변해갔다. 그는 가방 안을 거칠게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엘 가보았어. 집에선 포크레인 기사가 새참 안주냐고 화를 내고 수는 커다란 거실에 쪼그리고 누워 잠들어 있었어. 너 언제 갔느냐고 물으니까, 수를 내려놓자마자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곧바로 나가더라고 하더군. 그래서 수를 침대에 눕혀 놓고 다시 와 보았어.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다시 기다린 거야. 네가 어디에서 올지 오리무중이었는데…. 놀랍게도 거의 3시간만에 모텔로 가는 숲길에서 나오더군. 그 숲길 너머엔 모텔밖에 없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대체….

그는 나의 목에 난 자주색의 흔적을 노려보았다. 가방의 안쪽 지퍼를 열었다.

나는 가방을 뺏으려 했다. 그가 나를 밀쳤다. 지퍼가 열리고 세 통의 편지가 그의 손에 잡혔다. 그는 편지를 한 통 뜯었다. 나는 내 차의 문을 열고 타려고 했다. 그는 나의 목을 한 손으로 쥐고 사이좋게 읽어보자는 듯 봉투에서 꺼낸 편지를 내 눈 앞에 펼쳐 보였다.

―남편이 나를 쓰다듬고 내 위로 몸을 겹칠때 나는 뾰족한 곳에 올려진 물그릇처럼 위태로워요. 쏟아지는 물처럼 입안에서 터져버릴 것 같은 당신의 이름. 이 손길이 이 무게가 이 숨소리가 이 냄새가 당신 것이라면…. 나는 손으로 입을 가려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당신의 손인지, 남편의 손인지 혼란스러운 관능에 빠져드는 나 자신의 욕망이 두려워요. 그래요. 바로 이것이 죄이겠지요. 이제 남편과의 섹스와 당신과의 섹스 중 어느 것이 더 부정한 지 분별할 수가 없어요. 당신에게 나를 절대적으로 허용하고, 당신의 절대적인 허용을 받고 싶어요. 가장 깊은 곳까지 영원히, 나 아니면 누구도 아닌, 당신 아니면 누구도 아닌 배타적인 관계로서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왜 나를 피하나요? 이것이 당신이 게임을 끝내는 방식인가요….

그는 편지를 구겨 쥔 손으로 나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리고 자신의 차가 있는 곳까지 끌고 가 차 안에 밀어넣었다. 그의 몸이 진동기처럼 부르르르 떨리고 있었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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