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때 ‘총리 독재’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내 경쟁자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고 지나칠 정도로 과감하게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전후(戰後) 독일의 분단사적 관점에서 보면 콜총리는 ‘전후시대’를 끝나게 한 인물이다. 콘라트 아데나워 전대통령이 서유럽에 진 빚을 갚았고 빌리 브란트 전총리는 71년 바르샤바에서 무릎을 꿇어 나치의 잔혹한 죄를 동유럽에 사과했다.헬무트 슈미트 전총리에 이어 국가경영을 맡은 콜총리는 전임자들이 동서유럽에 진 빚을 갚은 상태에서 ‘독일의 길’을 추진했다. 그 길은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이었다.통일의 결과였지만 베를린에 주둔중이던 2차대전 전승 4개국 군대도 철수해 전후시대는 마감됐다.
그의 정책중 특히 돋보인 것은 통일후 동독주민에 대한 배려였다. 그는 나치와 공산통치하에서 굳어진 그늘지고 왜곡된 정서를 치유하는 데 힘을 쏟았다. 서독주민에게는 양보와 인내를 요구했다. 동서간 갈등을 해소해 화합을 이룩하자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산업국가로서의 독일’을 줄기차게 강조했던 그는 이제 경제구조의 고도화와 사회통합의 무거운 짐을 게르하르트 슈뢰더 후임총리에게 넘겨주게 됐다.콜총리는 자신이 평소 좋아한다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2악장을 오랜만에 조용히 감상하면서 ‘미완의 통일’을 완결할 방안을 생각할 듯하다.
윤희상<국제부>he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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