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는 전직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의 대북접촉을 수사하다가 ‘총격 요청’ 혐의를 포착했으며, 안기부 수사기록을 넘겨 받은 검찰은 그 배후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이들 3명의 구속영장에 대북접촉 혐의만 기재하고 ‘총격 요청’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조사가 진행중이라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사건의 진위와 전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현단계에서는 이 문제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 옳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지금 정치권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키며 정국을 소용돌이에 빠뜨리고 있다. 여권은 혐의내용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며 이회창총재가 미리 알았는지 여부를 밝히고 정계에서 은퇴하라고까지 요구했다. 반면에 이총재측은 “그런 비선조직은 없었다”고 부인하며 ‘이회창 죽이기’의 일환일 뿐 ‘근거 없는 모함’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매우 중대하고 민감한 사안이지만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판단할 자료가 우리에게는 없다.
사정이 이러한만큼 검찰은 무엇보다 먼저 사실 여부를 확실하게 가려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치적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던 용의자들이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는지, 했다면 독자적으로 했는지, 한나라당이나 이총재측이 관련됐는지 등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 결과에 상응하게 처리해야 한다. 특히 ‘이회창 죽이기’같은 정치적 의도가 수사에 끼여들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총격 요청’ 못지않은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수사당국은 정치적 고려를 완전히 배제하고 실체적 진실부터 엄정하게 파헤쳐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여야는 지나친 정치공방을 자제하기 바란다. 이처럼 중차대한 문제까지 정쟁화(政爭化)해서 뭐가 뭔지 모르게 뒤범벅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당국의 조사를 지켜보며 협조할 것이 있으면 협조하는 것이 옳다. ‘총격 요청’ 혐의는 정파의 이해(利害)를 훨씬 뛰어넘는 국가존립 차원의 문제다. 수사에 정치적 계산이 깔려서도 안되고 여야간 정쟁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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