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보통남자 윤대남씨 일생 그린 「평사일기」

  • 입력 1998년 10월 7일 19시 23분


“내 살아온 이야기를 다 하자면 책으로 묶어도 모자라지.”

생의 마지막 구비에 이른 노인들에게서라면 한번쯤 들어볼만한 넋두리. ‘평사일기’(장문산)는 그 넋두리가 현실화된 책이다. 영웅도 유명인사도 아닌 윤대남씨(1922∼98). 일제하 전남 승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동네 의사로 6남3녀를 뒷바라지한 아버지. 멋스레 갖다붙인 호도 없이 그저 태어난 마을이름을 따 ‘평사(平沙)선생’으로 불렸던 바닷가 모래알 중 하나같은 보통남자.

‘평사일기’는 그가 남긴 10여권의 일기를 생전의 벗 이돈갑씨(71)가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작가 이돈갑씨도 초야에 묻힌 채 혼자 습작만을 거듭해온 인물. 칠순을 넘겨 처녀작 ‘평사일기’를 펴냈다.

“처음부터 소설 쓸 작정을 했던 것이 아니라 아버지 영전에 비문 대신 살아계실 때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일대기를 바치고 싶다는 자제들의 소망으로 시작한 일이었어요. 생전의 고인과 10여년 교유도 있고해서 일기로 다 표현되지 않은 내용은 제가 창작했지요.”

‘평사일기’는 고인과 생존한 유족들을 실명으로 밝혔고 미화하지 않았다. “인간의 약점까지도 솔직하게 그리지 않으면 살아있는 글이 아니다”라는 작가의 고집이 관철돼 주인공의 젊은 시절 외도, 말년에 당한 사기극, 가족간의 은근한 불화등 집안 식구들끼리 그저 쉬쉬하고 덮어둘 흠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솔직함 덕분에 한 평범한 남자의 일생이 시대의 풍경화로 되살아난다. 작가는 작품속에 ‘왕청되다(차이가 엄청나다)’ 등 순 우리말 4백50여단어를 살려쓰는 정성을 기울였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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