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갑수/우리말 표준어교육 강화해야

  • 입력 1998년 10월 7일 19시 39분


9일은 한글 반포 오백쉰두 돌이 되는 날. 약소민족이라 하여 주눅들고, IMF라 하여 움츠려 있는 우리가 모처럼 어깨를 펼 수 있는 날이다.

이 세상에는 약 3천개의 언어가 있고 약 4백개의 문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언어에는 문자가 없다. 우리의 경우도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더라면 문자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미개한 민족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한글의 창제는 대세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위 한자 문화권에서 한자를 빌려 민족어를 표기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거란이 920년 한자에 대항하여 표음문자인 대소 거란문자를 만들었듯 우리도 1446년에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 서문에 보이는 자주정신 애민정신 실용정신이 잘 말해 준다.

▼ 언어혼란 가다듬을 때 ▼

한글은 문자사상 빼어난 가치를 지닌 것이다. 이는 첫째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 자음은 발음 부위에 따라, 모음은 혀의 모양에 따라 글자가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인 문자는 한글 외에 다시 찾아볼 수 없다.

둘째 독창적으로 만들어졌다. 알파벳이나 가나(假名)처럼 남의 문자를 모방하거나 빌린 것이 아니다.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독자적으로 창제하였다.

셋째 배우기가 쉽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이 다하기 전에 깨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한 것이 그 단적인 증거다.

넷째 표기의 폭이 넓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변방의 말까지 적을 수 있다고 한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러면 이러한 한글의 운용은 어떻게 되었는가. 문자는 언어와 쉽게 연결되는 쪽으로 발달해 나간다.

상형문자에서 표음문자로 발달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훈민정음의 경우도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과 같은 초기 문헌에서는 형태를 중시하는 표기를 하였다. 그러나 석보상절에서부터 발음위주의 표기로 바뀌었다.

이러한 원칙은 1933년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되며 다시 바뀌었다. 음소주의적 표기가 형태주의적 표기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표기원칙은 1988년의 ‘한글 맞춤법’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형태주의적 표기는 의미 파악을 용이하게 한다. 그러나 표기를 어렵게 한다.

1950년대의 한글파동의 원인도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정서법은 누구나 준수해야 할 규정이다.

따라서 이는 무엇보다 편리하고 쉽고 정확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이중 잣대까지 적용하고 있어 표기의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이는 ‘어리석은 백성’, 곧 민중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뜻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지나친 형태주의적 표기는 지양되어야 한다.

서구 제국과는 달리 우리 나라는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언어 분쟁의 소지가 없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언어 현실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표준어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심한 언어의 혼란이 일고 있다. 표준어의 사용 정도에 따라 문화민족 여부가 가름되기도 한다.

방언을 꼭 배격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중방언을 쓰도록 하여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표준어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에서 표준어 교육이 철저하게 꾀해져야 한다.

매스컴 특히 방송이 방언의 전시장이 되고, 전파창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표준어는 교양인의 언어라는 의식이 정착되어야 한다. 말이란 뜻만 통하면 되는 것이라는 ‘언어 불감증’도 불식되어야 한다. ‘표준어 사정(査正)’ ‘외래어사정’을 위해 국어심의회는 항시 가동되어야 한다.

▼ 실용적인 어문정책을 ▼

남북한의 언어의 차이가 심화되는 것에 대해서도 정책적 차원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 언어의 통일은 필요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정책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

한국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하고 강조해야 할 것이 한국어 및 한국문화의 보급이다. 이는 바로 이름 없는 민간 외교사절을 양성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서문의 3대 정신은 오늘도 국어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이다. 주체적이고, 민중을 위하고, 실용성을 높이는 어문정책의 추진을 다그쳐야 하겠다.

박갑수<서울대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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