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엔화강세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돼 신3저가 실제로 도래한다 해도 우리가 그같은 호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다. 신3저가 사실로 나타난다면 우리 경제의 여러 어려움을 덜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 구조조정을 뒤로 미뤄두고도 경제회복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환상과 도덕적 해이(解弛)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러잖아도 경제정책 운용의 중심이 구조조정에서 경기부양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외경제여건의 호전은 과거로의 회귀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 그렇게 되면 정말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 버릴 것이다. 80년대 중반의 3저 호황과 90년대초 엔고 상황은 우리에게 구조조정의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는 그같은 호기를 살리지 못해 오늘의 위기를 불렀다.
개혁이란 한마디로 구조를 고치자는 것이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당연히 엄청난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면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장기화하게 된다. 실물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경기부양이 필요하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착실한 구조조정의 가시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 그리고 경제체질의 개혁 없이는 근본적인 위기극복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개혁의 방향이다. 지금의 개혁은 무엇을, 왜 바꾸어야 하는가 하는 본질은 외면한 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정부 스스로도 실패를 자인한 정부조직개편이요, 소리만 요란했던 기업구조조정이었으며 허울만의 규제혁파다. 우리의 구조조정 노력을 지켜보는 외국 투자가의 눈길이 싸늘하고 냉소적이기까지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카이야 다이치 일본 경제기획청장관은 그가 펴낸 ‘다음 시대는 이렇게 열린다’는 일본 혁신전략에서 “개혁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통박한다. 행정 재정 금융 사회보장 경제구조 교육의 6대 개혁과제가 겉돌고 있음을 이렇게 질타한다.
“개혁을 이끄는 전문가집단들이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당장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구조조정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착수할 수는 있지만 개혁의 목적은 달성할 수 없는, 그래서‘입구는 열려 있으나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개혁’이 되고 말 것이다. 참다운 개혁의지나 발상은 그 조직에서 자란 테크노크라트에게는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참신성 개혁성 도덕성이며 개혁에 필요한 전문성은 조직 내 유능한 실무자의 조언만으로도 충분하다.”
한국의 개혁을 되짚어 보게 하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경제참모 중에는 위기의 본질이 무엇이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 왜 필요한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는 듯 보인다. 그런 사람에게 제대로 된 개혁프로그램을 기대할 수는 없다.
김용정(논설위원)yjeong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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