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서나 혼인취소신고서에는 ‘폐가할가’ ‘복적할가’라는 칸이 있다. 무협지에서나 나올 듯한 이 용어는 ‘폐가(廢家)를 할 집(家)’ ‘복적(復籍)을 할 집(家)’이라는 뜻. 한자와 한글이 뒤섞인 데다 띄어쓰기마저 안돼 있다.
자주 쓰이는 ‘물납신청서’ ‘법정동코드’ ‘중간선행사인’ ‘공부대조필’ 등은 그나마 쉬운 편. ‘폐가무후의원인과년월일’정도 되면 숨을 어디서 쉬어야 할 지조차 알기 어렵다.
어떤 용어는 설명마저 암호문 수준이다. ‘복적신고’라는 용어는 “남편이 사망한 후 처와 남편의 혈족 아닌 직계비속은 친가에 복적하거나 일가를 창립할때 신고하는 민원사무”라고 설명돼 있다.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설명을 들어야 할 지경인데 그나마 완벽하게 이해하고 설명해주는 공무원이 없다.
실제로 혼인신고를 하러 온 민원인 중 ‘혼인해소년월일’ ‘수반입적자’ ‘폐가할가’ 등의 용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담당 공무원에게 몇 번씩 물어보는 수고를 겪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어려운 말을 써야 권위가 선다는 관공서의 잘못된 권위의식’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행정은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서비스다. 용어가 어렵다고 관공서가 근엄해 보일 리도 없고 설혹 권위가 선다 하더라도 그것은 필요없는 권위일 뿐이다. 행정개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쉽게 써도 될 말을 어렵게 쓰는 잘못된 관행부터 바로잡는 것이 행정과 국민을 더 가깝게 만드는 첫 걸음일 것이다.
이완배<사회부>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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