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말뿐인 규제개혁

  • 입력 1998년 10월 13일 19시 12분


정부가 무엇보다 역점을 두고 있고 또 국정개혁의 가시적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말뿐인 규제개혁을 강도높게 질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새정부 출범 후 규제개혁위원회를 새로 설치하고 연내에 각종 규제 50%를 줄이겠다고 했으나 실제로 정비된 규제건수는 10%에도 못미친다. 각 부처가 확정한 철폐계획 자체도 20%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들린다. 정부의 개혁의지가 고작 이 수준인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정부의 규제개혁노력이 한심하다는 것은 저조하기 짝이 없는 실적만을 들어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 내용이 더욱 문제다. 핵심규제는 그대로 놔둔 채 지엽적인 규제완화로 수치상의 실적 끌어올리기에 급급하고 있다.

또 철폐보다는 개선이나 완화쪽에 역점을 두면서 인허가 관련 규제정비는 시늉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 한쪽에서 규제를 풀면서 다른 한쪽에선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과 국민에게 정부의 규제완화 노력이 피부에 와 닿을 턱이 없다.

규제개혁이 이처럼 겉돌고 있는 이유는 자명하다. 관료집단들이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각종 규제를 붙들고 있으면서 계속 군림하려는 권위주의적 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그들의 ‘밥그릇 지키기’와도 직결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규제가 있는 곳에 비리가 있고 부정부패가 자라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규제개혁은 더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규제 외에는 과감히 철폐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지금은 국제규범을 제도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다.

외자유치나 금융 유통 무역분야의 활성화를 통한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의 극복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시급한 개혁과제다. 국민생활과 기업활동의 불편을 덜어줌으로써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뒤늦게 관련부처가 연내 정부규제 50% 정비목표를 재확인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다짐만으로는 안된다.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법령이나 조례에 근거가 없거나 위임범위를 벗어난 1천6백여건의 규제부터 즉각 철폐해야 한다.

계속 규제의 필요성이 있을 경우 규제 요건이나 절차 심사기준을 법령 조례 규칙 등에 반드시 규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기존규제 1만8백여건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당초 목표인 50%를 반드시 철폐하도록 하고 이를 실현하지 못할 경우 엄중한 문책이 있어야 한다. 규제개혁 없는 행정개혁 그리고 총체적 국정개혁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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