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래정/워크아웃 「엄포」와 속사정

  • 입력 1998년 10월 13일 19시 12분


정부가 빅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서슬이 퍼렇다. ‘워크아웃’이란 마지막 수단까지 동원, 입이 있는 정부 당국자는 다 한마디씩 하며 5대 재벌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요란한 정부 공세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가 이번에 못박고 나선 ‘11월말’은 당초 재계가 반도체 경영주체 선정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일정 그대로다. 기업살생을 가리는 워크아웃도 재계가 구조조정의 반대급부로 요청했던 대출조건 조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도 정부측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기업퇴출은 막대한 규모로 불거질 금융권 부실채권과 대규모 실업문제 해소 등을 감수해야만 가능한 선택이다. 현실성이 그만큼 희박하다는 얘기다.

정부의 5대그룹 압박이 먹혀들지 않는 것은 구조조정의 ‘절반의 실패’에 적잖은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첨예한 갈등을 겪는 발전설비의 경우 80년대 신군부가 현대양행을 공기업화해 독점체제로 만든 뒤 96년 규제완화 차원에서 경쟁체제를 도입,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의 중복투자를 유도했다. 두해도 지나지 않아 불거진 일원화 논의는 결국 해당업체의 강력한 반발을 키웠다.

중복 과잉투자 여부를 정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문제. 중복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은 특혜시비와 함께 필연적으로 후환을 부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미국이 유독 자국업체의 이해가 걸린 자동차 철강의 과잉을 문제삼는 데서도 과잉판단이 비경제적 논리에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대기업 퇴출 운운하기에 앞서 ‘누구나 납득하는 회생과 퇴출’을 보장할 수 있도록 표류중인 현행 워크아웃제도부터 뜯어고치는 것이 급선무일 듯 싶다.

박래정<정보산업부>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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