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출연금 1백80억달러의 지출조건 협상은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한다. 유독 한국을 지목해 IMF합의사항을 감시하는 조건을 넣었다고 해서 하는 국수주의적 생각에서가 아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화당은 IMF출연금 지출을 봉쇄하기 위해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에 대한 IMF 지원중단을 사전에 보장하라는 요구를 내세웠다. 이는 공화당의 낙태금지 정책을 강조하면서 여성의 권리보호를 위해 낙태를 인정하고 있는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IMF의 자금부족이 발등의 불이 되어도 공화당은 실현이 불가능한 요구조건을 고수했다. 그러던 공화당이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돌아 미국을 위협할 조짐을 보이자 낙태조항을 슬그머니 제쳐놓고 IMF개혁을 새로운 조건으로 내세웠다.
말이 IMF개혁이지 공화당이 주장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의회와 백악관의 합의사항에는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농산품시장 개방과 무역규제 철폐를 위해 IMF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비롯해 자금수혜국들을 규제하는 내용이 여럿 포함됐다. 쉽게 말해 IMF를 미국의 이해관철을 위한 ‘도구’로 바꾸자는 계획이다.
예산안 통과라는 국내적 절차를 위해 대부분의 IMF회원국들이 부당하게 생각하는 요구조건을 선택한 미국.
미국이 어려움에 빠진 세계를 구하는 데 앞장서는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리더가 아니라 패권국가의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홍은택<워싱턴특파원>euntac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