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부끄러운 학교촌지

  • 입력 1998년 10월 14일 19시 10분


도시 학부모 치고 교사에 대한 촌지문제로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촌지를 포기한 학부모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촌지는 학부모들의 신경을 쓰이게 하는 존재다. 촌지를 건네자니 가계부가 울고 안건네자니 자녀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봐 불안하다. 옳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봉투를 준비하는 학부모의 심정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서울 강남의 웬만한 학부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지만 촌지 명목도 가지가지다. 담임교사에게 촌지를 모아주기 위한 계모임이 있는가 하면 ‘상담촌지’ ‘행사촌지’ ‘당선촌지’ ‘수상촌지’ ‘내신촌지’ 등 전 교육과정이 촌지와 연결돼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초등학교에선 촌지가 많은 1, 2학년 담임을 맡으려고 교장에게 상납까지 하는 사례도 있다니 입을 다물 수 없다.

▼감사원의 부정방지대책위원회가 보고서에서 예시한 이런 촌지부조리가 물론 교육계의 전체 모습은 아니다. 참교육을 위해 애쓰는 교사도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부 교사들의 비뚤어진 행태가 교육계를 흙탕물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이런 현실로 감사원 감사라는 타율을 스스로 불러들인 교육계가 안타깝다. 촌지문제를 풀지 않고는 우리 교육이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 촌지교사를 추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교사 못지 않게 학부모들의 책임도 크다. 순수한 고마움의 표시였는지, 자녀를 잘 봐달라는 이기적 청탁의 대가였는지는 촌지를 건넨 학부모가 누구보다 잘 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표시는 있을 수 있다. 그것마저 없다면 교단이 너무 삭막하다. 문제는 객관적으로 그 구분이 쉽지 않은 데 있다. 감사원의 특감이 주목된다.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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